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아. 모두가 날 괴롭혀. 지금까지 그 애는 나대신 오빠를 차지하고서, 날 놀리듯 웃고, 날 쓰레기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봐왔어. 미웠어. 너무나 미웠어.
그래서 오늘 그 애를 덮쳤어. 내 구덩이로 끌고 왔어.
지금 이 애를 죽이진 않을 거야. 사람은 귀신보다 무서울 수 있으니까, 이세상은 지옥보다 괴로울 수 있으니까, 내가 느낀 고통의 일부라도 더 느끼게 해줄 거야.
그때까지는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어. 죽여다라 소리치게 만든 후 최악의 모습으로 끝내주겠어. 그를 위해서 난 저승의 뱃사공이 내민 손목을 자르고 달려왔으니까.
PS: 오늘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해. 어서 정체를 밝히고 감동의 재회를 하고 싶지만 오늘은 때가 아니었어. 다음엔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럼 오빠가 진짜 사랑해야 할 대상이 누군지 알겠지. 그게 오빠의 구원이고 나의 구원이야. 그날이 너무나 기대된다. 하여간 오늘 기뻤어. 사랑해.
2화.
“하우우움~~~.”
어느새 날짜가 지나고 이미 저녁.
타는 듯 붉은 노을이 주택가의 거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그 아름다운 장면을 배경 삼아,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꾸벅거리며 졸고 있었다. 귀에는 음악을 사랑하는 힙합 소년같이 미니 헤드폰을 끼고 있는데, 이게 무전기 겸 위치 발신기다.
시나가 그 무전기로 말을 걸어왔다.
[선진씨. 형사물은 좋아하세요?]
“하음~. 형사물이라뇨. 뜬금없이.”
하품이 멈추질 않는다.
내가 왜 아직 해도 지지 않았는데 졸고 있는가. 그건 오늘 아침까지 나리를 찾을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사물을 보면 보통 불량배들을 족쳐서 정보를 얻잖습니까. 우리도 그걸 해야 하니까 물어본 거죠.]
“에? 아는 사람에게 묻는다면서요. 그래서 잔말 없이 하겠다고 한 건데.”
내가 당황하자 그녀는 장난질이 성공해 통쾌하다는 듯 웃어댔다.
[그야. ‘아는’ 사람이죠. 어떤 식으로 아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속았다. 망했다. 죽었다.
이제부터 나 혼자서 그 사람과 만나야 한다.
혹시 그가 시나, 림피드, 혹은 루시 같은 말도 안 되는 괴물이라면….
유언장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가란 대로 가다 보니, 동네 뒷산의 등산로 입구가 나타났다.
오르다 보면 츄리닝 입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인사하고 약수터에서 체조할 수 있을 듯한 곳이었다.
“이 길 맞아요? 이제부터 산인데.”
[아아. 맞으니까 빨리 가기나 하시죠.]
무지하게 건성건성 답했다. 불친절한 내비게이터 같으니.
궁시렁대며 어두워져 가는 등산로를 올랐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으세요.]
시나의 무전에 옆을 보니, 거긴 사유지니까 들어가지 말라는 팻말과 높은 철조망이 보였다.
“길 없는 데요?”
[가라면 좀 잔말 말고 가세요. 매번 귀찮게시리 말을 2배로 늘려야겠어요?]
이 여자는 왜 또 짜증일까. 출입금지 지역에 침투해야 하는데 이 정도 묻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혹시 여자들이 한 달에 한 번 걸린다는 마법에 걸려 있는 건가?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쓸데없이 말싸움해봤자 골치만 아프다.
한동안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아 푹신푹신하달까, 다져지지 않은 흙더미를 밟고, 마른 작은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갔다. 가다 보니 뭔가 썩는 냄새가 풍겨왔다. 산 특유의 낙엽 썩는 냄새와는 다르다.
근처에 동물이 죽어 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상대는 무슨 종류의 괴물이에요? 듣질 않았네."
[종족은 아귀라고 부릅니다. 녀석도 언데드지요. 원래 아귀는 지옥에서 형벌을 받아 무한의 굶주림을 겪는 영혼을 뜻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계속 배고파하는 언데드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원래 굶주림은 모든 언데드의 특징 중 하나기도 합니다. 좀비영화만 봐도 적을 그냥 공격하는 게 아니고, 배고파서 먹으려 합니다. 귀족인 흡혈귀조차 언제나 피에 굶주립니다.
특히 아귀는 불완전하게 부활해서 생명에너지가 밑 빠진 독처럼 새어나가, 배고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종류입니다. 계속 먹어대지 않으면 금세 죽지요.
그래서 오래 산 아귀는 먹는 것에 관련하여 아주 강하고 특이한 능력을 가진 놈들이 있습니다. 지금 만날 녀석이 그런 녀석이죠.]
"위험하진 않아요? 나도 먹으려 한다든가."
[그야. 인간은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죠. 아주 환장을 하고서 먹으려 할지도요.]
아주 담담하게 말씀해주시는 시나씨.
당신의 말은 제가 가면 바로 죽을 거라는 말로 밖에 안 들리는 데요. 뭐죠? 저는 자살특공대입니까? 아니, 언데드끼리 짜고서 식량 조달하는 거 아니에요?
아아. 나리때문만 아니면 이런 짓 안 하고 도망칠 텐데. 미치겠다.
[사족을 붙이자면, 녀석은 머리가 나쁩니다. 그리고 그만큼 생각 없이 덤비니 도망칠 준비부터 하고 만나세요. 후후.]
그 말은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처럼 뒷걸음질로 녀석과 만나라는 겁니까?
잠시 정말로 뒷걸음으로 접근해 볼까 고민했지만, 똑바로 걷기로 했다.
녀석을 잘 꼬드기지 못한다면 나리를 찾아낼 수 없다.
성공 못 하면 배드 엔딩이다. 그냥 해내는 수밖에 없다. 도망칠 생각부터 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걷다 보니 여러 가지가 보인다. 말라붙어 썩고 있는 피 웅덩이, 썩어서 깨져나간 동물 뼛조각들이 사방에 퍼져 있었다.
점점 양이 많아지는 걸로 보아 다 왔겠구나 싶었다. 곧 종이 박스로 만든 노숙자 집 같은 것이 나왔다.
"저기, 안녕하세요. 누구 없나요?"
예의상 한번 불러봤다. 그랬더니 종이 상자에서 누군가 나왔다.
키는 100cm 정도? 내 허리 정도였고, 옆으로도 그만큼 퍼져 있는 초 비만 남자애였다.
볼 살에 눌려서 여우같이 가늘어진 눈매가 의외로 날카롭다.
그는 걸레가 다 된 청바지에 피 묻어 갈색이 된 티셔츠를 입고 있다. 지금이 여름이라면 파리가 상당히 꼬였으리라.
게다가 방금까지 무슨 동물을 잡아먹고 있었던 지 입가와 손에서 핏물까지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비호감, 엽기, 추악, 그로테스크.
이 모든 단어가 합쳐져 하나의 형상이 된 듯 했다. 구역질나는 모습이었다.
"넌 뭔 고기다?"
녀석은 피로 벌게진 이빨을 혀로 핥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게 '인간고기'입니다 라고 답하려다 멈추었다. 그렇게 말했다간 '그럼 잘 먹겠습니다.'하고 바로 잡아 먹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기선 머릴 써야 한다.
"너 고기 좋아하지? 그럼 1등급 한우는 먹어봤어?"
"고기, 그 머시기 고기에 있는 목장에서 잡아먹어 봤다. 맛있다. 난 언제나 그걸 먹을 수 있다."
한우를 먹여준다는 걸로 꾀는 건 안 되나 보다. 그럼 녀석이 못 먹어봤을 듯한 것이 뭘까?
그건 야생상태에선 구할 수 없는 물건일 것이다.
"그럼 그걸 햄버거로 만들어 먹어봤어?"
"맛있다? 그거 맛있다?"
"그야, 끝내주지! 생고기는 먹어도 그게 그거지만, 버거로 만들면 아주 특별한 맛이 나거든. 이걸 안 먹어보곤 죽을 수 없지. 같이 햄버거 가게에 가자."
내 과장 덩어리 세일즈에 녀석이 흥분한다. 침이 입가에서 흘러내리고 있다.
"으으…. 먹고 싶어. 먹을 거야. 있는데 쳐들어간다. 하지만, 마을에 내려가면 혼난다. 전에 갔을 때, 나쁜 여자들이 괴롭히고, 뱃살 뜯어가고, 10일간 밥도 못 먹게 했다. '건물 부수면 안 돼, 사람 먹으면 안 돼, 마을 내려가면 안 돼.' 계속 말하게 시켰다. 나 죽는 줄 알았다."
녀석이 부들부들 떤다. 공포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나 보다.
시나가 말했었다. 알긴 아는 사이인데 어떤 식으로 아는 사이인지는 모른다고.
공포의 대상으로 아는 사이인가 보다.
"걱정하지 마. 안 들키면 되잖아. 설마 그 사람들이 24시간 너만 지켜보고 있겠어?"
녀석은 잠시 생각하더니,
"맞다. 나 간다. 먹을 거, 좋아한다. 그전에 잠깐."
아귀는 자신의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뭔가 아득아득 뼈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나온 아귀의 손에는 개의 머리가 들려져 있었다.
몸이 어디 갔는지는... 모르겠다. 녀석은 그걸 멀리 던져버렸다.
섬뜩함을 느낀 나는 빨리 앞장서서 걸었다.
아귀는 뒤에서 뒤뚱뒤뚱, 뱃살 흔들림에 무게중심축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며 따라오고 있다.
저 괴물이 언제 마음이 변해서 덮쳐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등이 싸늘하다.
위장이 꼬일 듯한 것을 참으며 10분간 산길을 걸었다.
이제 마을 쪽으로 내려가면 약속 장소다.
"마을이다. 정말 괜찮다? 그 여자들이 다음에 또 마을에 가면 아무것도 먹지도 싸지도 못하게 돌멩이를 박아놓는다고 했다. 특히 작은 금색 여자는 괜찮겠지만, 키 크고 까만 쪽은 진짜로 하려 했다."
아귀는 퍼렇게 질려서는 주저했다. 식욕과 공포의 경계서 고민하는 듯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당했기에 저렇게까지 무서워할까? 조금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때 그의 등 뒤에, 녀석이 말한 '키 크고 까만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가 아귀의 어깨에 손을 얻었다.
"까꿍!"
깜짝 놀라서 공같이 둥근 몸이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으, 으아. 너 어디서 왔다? 니 고기의 느낌이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났다!"
"바보. 벌써 까먹었어?"
그녀는 옆의 지면에 박혀있는 커다란 칼을 가리켰다.
그것은 얼핏 비석처럼 보였다. 직사각형의 형태, 크기, 시냇물처럼 흘러내리는 듯한 푸른 문자의 비문. 거기에 귀신이라도 들러붙은 듯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누군가를 장사지내려는 표식 같아 은근히 소름끼쳤다.
"내 자의식형 술식발현기. -귀검 비영-. 난 술법이나 마법은 모르지만, 저것이 결계를 만들어 줬지. 전에도 당해봤잖아. 바~보야."
시나가 한쪽 입가를 올려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아아. 저건 분명 사디스트가 흥분했을 때의 웃음이다.
아귀가 겁에 질려 마을 쪽으로 도망친다.
"으아아. 목구멍, 똥구멍에 돌멩이 박는 여자가 돌아왔다!!"
그의 달리는 모습은, 넘치는 뱃살이 흔들려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위태롭다.
"야. 임마! 날 뭐 하는 여자로 보는 거야!"
시나가 칼을 집어 들고 뒤쫓는다.
그 모습을 보고 아귀가 잘 도망치길 비는 건 잘못일까?
잘못은 아니라도 지금 나에겐 맞지 않다. 아무리 불쌍해도 나에겐 내 목적이 있다.
그럼 나도 돼지잡이에 동참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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