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멈춰! 지금 멈추면 안 때린다. --- 뒷구멍의 안전은 장담 못 하지만. --- 아냐!"
나보다 멀찍이 앞을 달리는 시나가 혼자 떠든다. 그보다 앞의 아귀는 그녀를 무시하고 달린다. 단 손으로 엉덩이는 가린다.
현재 시나는 아귀에게 거의 접근해서 제대로 추격전을 벌이고 있지만, 난 한참 뒤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다. 굴욕이다. 시나라면 몰라도 출렁이는 뱃살에 방해받으며 뒤뚱거리는 아귀보다 느리다니 이럴 순 없다!
물론 저쪽은 괴물들이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멀리서 보면 단순히 내가 느린 것처럼 보일 거기에 비참했다.
후장수호를 위해 양손으로 엉덩이를 가린 비만 뚱땡이 꼬마를 잡으려고 2명의 남녀가 전력 질주하는 멍청한 꼴을,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쳐다본다. 그리고 곧 피투성이에 흉측한 아귀의 모습과 시나의 거대한 칼을 보고 놀라 혼비백산 도망친다. 아까 전부터 이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
"근데 왜 마을로 보내는 거예요? 사람들이 위험해지잖아요."
이미 멀어진 시나에게 무전으로 물었다.
[가만있어봐요. 그건 제가 변태이기 때문입니다.]
"에? 방금 뭐라고..."
내 귀를 의심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높이 뛰어올라 아귀의 앞으로 날아갔다. 그에 아귀는 옆으로 돌아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여기가 목표로 한 작전지다.
시나가 녀석을 잡기 위한 환경으로 여기를 고른 것이다.
이유는 귀찮다고 설명 안 해주었지만 말이다.
일단 형태상으로 검투사의 콜로세움처럼 가운데 지상주차장이 널찍이 있고, 주변을 아파트의 숲이 둘러싸고 있다. 나가는 다른 출구는 어디 있는 지 안 보이고, 들어온 입구는 시나와 내가 막고 있는 것이 되었다.
아귀가 도망치는 사람들을 쫓아가려 하자, 시나가 그 앞쪽으로 뛰어 막아섰다.
이제 녀석은 앞뒤로 포위상태가 되었다.
좋은 걸까?
아니다.
내가 있는 입구 쪽은 완전히 뚫린 거나 다름없는 꼴이다.
아귀도 그걸 아는 지 뒤돌으며,
"날 속인 놈, 너부터 먹겠다!"
라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망했다. 괴물인 녀석과 싸우기는커녕, 달리느라 숨이 차서 도망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럼 남은 건 두뇌싸움에 걸어볼 뿐이다.
"앗! 저기 햄버거가!"
"뭐라고다?"
아귀가 내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본다. 이때다. 튀자!
'다리야 날 살려라.'하고 도망쳤다.
달리다 보니 아파트 창문으로 몇 명의 사람들이 우릴 내려다보는 게 보였다.
거리 쪽이나 지상 주차장의 사람들은 다 도망쳤지만, 건물 속의 사람들은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 싸울 생각인가? 시나가 아무리 변태여서 '멋지게 싸우는 날 봐줘요~♡'라고 하려는 거래도, 이건 심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때 시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식 기동(式 起動). 절대동결적 시공이해론(絶對凍結的時空異解論)-
그녀가 칼을 아스팔트 바닥에 박아넣었다. 그걸 두부처럼 가르며 들어가는 칼날.
그와 함께 주변이 미묘하게 더 싸늘해진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는 주변 공기의 질감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작전회의 때 졸면서 들은 것 같다. 이 결계는 액화 질소로 개구리를 얼려 보존했다 되살릴 수 있듯, 시공간 정보를 얼려서 냉동보관 시켜두었다가 되돌릴 수 있는 복구형 결계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숨을 들이켜면 심장이 어는 듯하지만 그만큼 기온이 내려간 것은 아니라는 기묘하고 불쾌한 감각이 세계를 침식했다. 주변의 사람들도 사라졌다. 마치 온라인 게임의 다른 서버에 접속한 듯 배경만 같고 다른 세계가 되었다.
아귀도 그것을 느꼈는지 시나 쪽을 돌아봤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그의 턱밑에 있었다. 바닥을 미끄러져 들어오며 올려 찰 자세를 잡고 있었다. 로켓 같은 발차기가 작렬했다.
턱뼈가 으스러졌을 것이다. 아귀의 무거운 몸이 10M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어서 시나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물구나무를 섰다. 떨어지는 그의 목을 다리로 잡고 바닥에 내리찍었다.
아스팔트가 부서지며 꽃잎 같은 파편을 휘날렸다.
내가 '그에겐 물어볼 게 있으니 죽이면 안 된다.' 고 하려는 데, 그녀는 멈추지 않고 쭉 뻗은 다리로 슛을 쏘듯 그를 차 날려버렸다.
100kg짜리 공은 앞에 있던 아파트의 벽을 뚫고 들어가버렸다.
"시나씨! 애 죽일 거예요? 아무리 사디스트 변태여도 심하잖아요."
"누가 변태에요! 아깐 급해서 해명을 못 했는데, 그건 비영검이..."
시나가 자기부정을 하려는 데, 아귀가 부서진 집안에서 뛰쳐나왔다.
-세계 고기-
그가 이상한 단어를 외치자, 안 그래도 넘치던 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금세 옷이 찢어지고, 몸에서 거친 흙색 털이 솟아났다.
완성된 모습은 멧돼지.
몸의 높이가 4M. 성인 남성 2명을 합쳐놓은 것보다도 크다.
일단 간단히 멧돼지라 불렀지만, 보통 멧돼지의 모양은 아니다. 일그러진 살덩이여서 토할 것 같이 생긴데다, 배 부분에 톱니 달린 입이 달려있었다.
왜 그렇게 생겨먹었는 지는 모르겠다. 단, 무언가가 특이한 형태를 추구한다면 거기엔 이유가 있을 거란 건 알 수 있었다.
녀석이 성문을 부수는 공성추처럼 대지를 울리며 시나에게 돌격해온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날 변태로 만들고선 해명도 못하게..."
시나는 열 받아서 맞붙으려 하지만, 곧 동작을 멈추었다.
녀석이 달리는 땅과 그 주변이 '고깃덩이'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붉고 질긴 산짐승의 고기.
그가 있는 주변은 그야말로 '고기의 세계'가 되는 듯하다.
일단 덤벼든 아귀를 투우사처럼 넘겨서 피한다.
자기 몸 관성을 이기지 못한 아귀 녀석은 그대로 달려가 아파트를 들이받았다. 하지만 아파트 벽도 고기가 되었기에 아무 타격도 없었다.
어슬렁어슬렁 기어나오는 녀석의 입엔 고기를 한 움큼 물고 있었다. 배의 입으로도 고기화 된 바닥을 뜯어먹고 있었다.
저 모습의 이유를 알았다.
배의 입은 주변을 고기화 시켜서 먹기 위한 것.
먹는다는 것은 힘을 만들고 덩치를 키우기 위한 것.
저 형태는 그걸 위한 것이었고 지금도 눈에 띄게 크고 강해지고 있었다.
이제 녀석의 높이는 5M
그리고 고기화 시키는 능력의 범위는 사방 50cm인 듯했다.
이건 벽에 뚫린 구멍 모양으로 알 수 있었다.
넓은 범위는 아니지만 녀석의 덩치가 있기 때문에 좁은 범위도 아니다. 무엇보다 그 능력은 자신의 온몸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빈틈이 없다는 강점이 있었다.
시나가 한숨을 쉬며 아귀를 노려봤다.
"귀찮아. 죽인다."
아니, 아니, 죽이면 안 된다니까.
하지만 죽인다고 해도 시나는 근접격투능력밖에 없어 보이는 데, 어떻게 이기겠다는 걸까?
일단 도망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그녀는 한번 녀석과 싸워 이긴 적이 있다. 그렇기에 이곳으로 끌고 와 싸우는 것일 터이다.
어떻게든 해내겠지.
뭐, 그녀가 정말 '변태적' 이유만으로 여기서 싸우는 것일 가능성도 버릴 수 없어 두렵지만 말이다.
나 혼자 멀리 숨어서 이런 분석을 하는 동안, 아귀가 배 쪽 입을 통해 트림 같은 포효를 했다.
크지만 낮고 깊은 진동에 땅이 울리고 뱃속 내장까지 울렸다.
하여간 하나부터 열까지 불쾌한 괴물이다.
짜증 난 시나가 바닥에 떨어진 아파트 콘크리트 조각하나를 집어던졌다.
가볍게 던진 그건 마치 탄환.
조각의 날카로운 부분에 공기가 찢어져 높은 휘파람소리 같은 걸 내나 싶더니 아귀의 배에 박혔다.
이물질이 박힌 채 회전했다. 뱃살이 말려들어가 찢어진다.
하지만 이미 돌은 고기로 변한 상태였다. 때문에 녀석의 살점으로 흡수되어 데미지는 회복되었다.
아무래도 원거리 공격도 의미 없는 듯했다.
아귀는 우리가 자신을 공격할 특별한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자 또다시 자신만만하게 돌격해왔다.
기어이 우릴 고깃덩이로 만들어 먹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시나는 뒤로 높이 뛰어올랐다. 아파트 5층 벽에 매달렸다. 왼손을 벽을 잡고 한쪽 무릎은 굽힌 채 앉아있는 모습은 마치 평지에 있는 듯 안정되어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있는가 싶었더니 손가락을 콘크리트벽에 박아넣어 잡고 있었다.
강시답게 힘과 몸의 내구도만은 최고인가보다.
거기까지 뛰어오를 수 없는 아귀는 아파트 1층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곧 밑이 고기가 돼버려 건물이 기운다.
피사의 사탑처럼 되었다. 아귀가 깔리지 않으려고 밑에서 빠져나왔다.
그에 시나가 벽에서 손을 뗐다. 공중 뒤돌려 차기로 건물을 때렸다. 접은 다리를 펴며 찍어찼다. 얼음에 정을 대고 망치로 두드린 듯 건물이 쫙 갈라졌다.
충격에 주변 창문에 깨져나가고 콘크리트 속 철근이 끊어져 나갔다.
곧이어 시나는 다시 잘려나간 위쪽 건물을 잡았다.
그걸 아귀에게 던지려나 보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힘이 세도 그건 불가능하다.
아파트에 비해 그녀가 너무 가볍다. 발 디딜 곳이 없는 데 힘을 써봤자, 움직이는 건 그녀의 몸이다.
그녀도 거기에 생각이 미쳤는지, 떨어지기 시작한 위층의 벽을 타고 오른다.
중간 부분을 다시 발차기로 갈랐다.
양쪽 조각을 한 손에 씩 잡았다.
"이것도 고기로 만들어 먹어보시지!"
아파트 4개의 층이 그녀의 힘으로 묵직하게 천천히 가속을 받았다.
마치 개미가 벽돌을 던지는 듯한 비현실적 광경이었다.
몇 톤일지 상상도 안 가는 돌과 철근 덩어리가 아귀를 향해 혜성처럼 날아가 딥임팩트를 일으켰다.
파편들이 날아왔다. 먼지 구름이 휘몰아쳤다. 난 주차된 자동차 뒤에 급히 숨었다.
"시나씨! 뭔가 물어본다면서요. 죽이지 마세요!"
"걱정 마세요. 이 정도엔 안 죽을 거예요. 아마도."
아마도면 안 되잖아요! 라고 하려는 순간, 아귀가 부서진 돌무더기에서 뛰쳐나왔다. 온몸이 찢어진 상처투성이였지만 변화된 고기를 먹어대서 그런지 2배 이상 커져 있었다.
"이제 피니쉬다!"
그녀는 아파트 더미를 땅으로 내던졌기에 그 반작용으로 아직 나머지 아파트 조각과 함께 공중에 떠있었다.
같이 떠있는 아파트를 발판삼아 아귀 앞으로 뛰었다.
아까 것이 메테오 스트라이크라면 이건 매그넘 총탄.
작지만 또 다른 강함을 가지고 아파트단지 바닥을 부수었다.
그녀는 보면 볼수록 힘이 넘쳐 주체하지 못하는 '파괴의 화신' 그 자체 같아 보였다.
그녀가 깊게 파인 땅속에서 어떤 철파이프를 찾아내더니 발로 쿡 찍었다.
구멍이 나더니 피리 소리 같은 게 났다.
설마...?
스커트 주머니에서 지포라이터를 꺼냈다. 불은 켜지 않은 채 하늘로 던졌다.
내가 '난 죽었다.' 3창을 했다.
그녀가 순간이동 한 듯 내 뒤로 다가와 끌어안았다.
몸으로 막아준다고 해서 가스폭발에서 안전하진 않을 겁니다만...
근데 그녀가 나의 내장을 입 밖으로 짜낼 생각인지 팔로 배를 압박했다. 숨쉬기 힘들었다.
그녀가 말했다.
"초음속 전투기가 이륙할 땐, 피가 아래로 쏠려 기절하는 걸 막으려고 배를 압박하는 옷을 입는 다더군요."
땅을 박찼다. 앗 하는 사이에 공중 100M 상공까지 솟아올랐다. 정말 100M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아니겠지. 100M면 장난 아니게 높은 곳이다. 흔히 빌딩 중에 초고층건물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기준이 100M 정도라고 알고 있다.
배를 압박했음에도 머리에서 피가 빠져나가 눈앞이 하얗고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렇게 정신없는 사이 시나가 주머니에서 또 뭔가를 꺼냈다. 돌멩이였다.
설마 여기서 돌로 철제 라이터를 맞춰가지고 불꽃을 일으키려고?
말도 안 되는 짓이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또 그 짓을 해낸다.
내 눈엔 보이지도 않는 곳을 향해 돌이 날아갔다.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섬광이 터져 나오는 게 보였다. 후폭풍에 돌덩이들이 날 죽일 기세로 날아들었다. 난 기겁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몸이 하늘로 오르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떨어지기 시작했다.
낙하한다는 게 이런 건지 몰랐다. 처음엔 느리게 시작하더니 점점 가속이 붙었다. 어느 지점에서부턴 너무 빨라서 속도감이고 뭐고 정신이 없었다. 그저 피가 얼어붙었다.
땅과 내 몸이 키스하여 납짝쿵이 되기 직전, 시나가 날 다시 위로 가볍게 던졌다.
우어억~
위장에서 뭔가 새어나오려 해.
그 사이 시나 자신은 땅에 떨어져 대지를 다시 한 번 박살냈다. 충격으로 돌파편이 날고 흙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그녀가 떨어지는 나를 받아들었다. 받는다해도 허리가 꺾여 죽거나 상당한 부상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날 다시 던진 건 떨어지며 추가된 가속도를 없애기 위한 거였나 보다.
그녀의 품에서 내려와 두 다리로 섰다. 다리가 후들거려 쓰러질 것 같다.
주변을 둘러봤다.
뭐랄까. 깨끗하다고 해야 하나, 아님 난장판이라고 해야 하나.
주변이 깔끔하게 밀려 있다. 다 박살 나있다.
내가 있는 곳은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무너진 아파트 더미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아래는 지하주차장이 있었는지 지반 자체가 푹 가라앉아 있었다.
그야말로 대참사. 결계로 복구되지 않는다면 이 나라 최악의 사고로 기록될 광경이었다.
게다가 폭발로 산소도 사라졌는지 숨이 막혀왔다.
여기가 트인 공간이어서 바람이 불어오지 않았다면 이미 질식사했을지도 모른다.
아아. 최악.
"선진씨. 잠시 자세를 낮추세요."
시나가 억지로 내리눌렀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 돌비(石雨)가 쏟아졌다.
하늘로 튀어 올랐던 돌덩이들이었다.
다행히 시나가 손바닥으로 쳐내어 주었다. 빗방울처럼 쏟아지는 모래는 어쩔 수 없이 뒤집어썼지만.
"그나저나 아귀는? 설마 가루가 돼서 이 모래에 섞여 있는 건 아니겠죠?"
"글쎄요?"
시나가 양손을 들어 올리며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 무책임한 바보가...
라고 생각했을 때, 불타는 거대한 고깃덩이가 눈앞에 떨어져 내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그녀 왈,
"럭키~. 밥하기 싫었는데 저녁밥거리가 생겼네."
나는 오늘 저녁을 굶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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