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사회는 양천제도로서 양인과 천민의 대우 차이가 매우 컸습니다
엄격한 신분제로 인해 천민이 받는 사회적 차별이 심했고 동학농민군은 폐정 개혁안에 '천인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할 것'이라는 조항을 넣어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죠
갑오개혁에서 제도상으로는 신분제가 폐지되었으나 사회적으로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아 1923년 백정들이 조선형평사 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사랑은 인간의 본성이다.
고로 우리는 계급을 타파하고, 모욕적인 칭호를 폐지하여,
교육을 장려하고 우리도 참다운 인간으로 되고자 함은 본사의 주지이다.
지금까지 조선의 백정은 어떠한 지위와 압박을 받아왔던가?
과거를 회상하면 종일 통곡하고도 피눈물을 금할 수 없다."
《조선 형평사 취지문》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천민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황일광 알렉시스는 백정의 집에서 태어났다.
이들은 읍내나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하며,
아무와도 일상적인 교제를 할 수 없었다.?
천주교에 입교하자 교우들은 그의 신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형제처럼 대하였다.
어디를 가나 양반집에서까지 그는 다른 교우들과 똑같이 집에 받아들여졌는데,
그로 말미암아 그는 자기에게는 자기 신분으로 보아,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 주기 때문에,
이 세상에 하나 또 후세에 하나,?
이렇게 천당이 두 개가 있다고 말하였다"
《조선 천주교회사》
천주교뿐만 아니라?동학에서도 인내천 사상을 강조하곤 했는데 인간 평등주의 때문에 평민층 이하에서도 지지를 받아 널리 퍼질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