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넘는 사람들이 감염되어 있었고, 특히 농촌의 사람들은 거의 100% 감염 되어 있을 정도로 만성화 되어 있었음.?
(인분을 비료로 했기 때문에 회충 비율이 대단히 높음)
아니, 한 사람 당 2개 이상의 기생충이 있는 사람들도 많아서, 실제 감염률은 100%를 돌파했던 시대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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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조선시대부터 만성화 된게 회충이기 때문에 옛 사람들은 오히려 기생충을 다 없애면 몸이 허해진다고 믿을 정도로 기생충은 일상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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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말, 필자가 농촌지역에서 의원을 개설한 일이 있었는데, 위경련으로 배가 아파 찾아오는 환자가 꽤 많았다. 그 중 노년층일수록 의례 당부하는 말이 있었는데 “선생님! 횟배입니다. 원회(元蛔). 안회(安蛔), 가회(假蛔)만 떨어지는 약을 주시오!”
그럴 때면 나는 원회란 무엇이며 가회는 무엇인가고 되물었다. 하나같이 대답은 “원회는 몸 한가운데 있으면서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모든 기능을 지배하는 중추적 역할을 하는데, 그 원회가 지금 노(怒)하였나 봅니다. 그러니 진정을 시켜야지 약을 먹어 떼어내 버리면 내 활동에 지장을 받게 됩니다.”
과거 인간의 중심, “몸 한가운데” 있는 것이 바로 ‘회충(蛔蟲)’이었다. 사람들은 회충이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모든 기능을 지배하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진짜 회충인 ‘원회(元蛔)’는 노(怒)하게 해서는 안 되는 존재이며, 절대 약을 먹어 떼어내도 안 되는 존재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회충이 아니라 흉내일 뿐인 가짜 회충, ‘가회(假蛔)’일 뿐이다. 이러한 인식 아래 사람들은 배가 아프면 으레 횟배로 자가 진단을 내리고, 성난 회충을 멸하는 대신 조용히 잠재울 방도를 찾았다. 영조 37년 『승정원일기』에서는 영조가 회충을 토한 뒤 이렇게 말한다. “회충은 사람과 함께하는 인룡이다. 천하게 여길 것이 없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