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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작소설]죽은 음양과 소원을 걷는 자. 1화-5글쓴이sinyagun
날짜 11-08-26 06:16조회1939
“죽었다가 깨어나도 안 될 놈은 안 된다죠.”

노래방의 룸으로 들어가자마자 시나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노래방으로 온 이유는 노래를 부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들어선 안 될 이야기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림피드는 구석에서 또 양주를 마셔대고 있다. 이번엔 선희까지 옆에 끼고 부어라 마셔라다. 선희는 술을 안 마시지만 같이 어울리며 안주를 집어먹고 있다. 즐거워 보이니 저기 저대로 놔두자.
그보다,

“갑자기 뭔 소립니까, 시나씨.”

“두서 있게 말하기 귀찮으니까, 되는대로 말할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 금지입니다. 입은 닫아두시고 들으세요.”

그녀는 마치 이 몸이 설명해주는 걸 영광으로 알고 무릎이라도 꿇고 있으라는 듯이 말했다. 조금 기분이 상했다.

“그렇게 귀찮으면 숨도 쉬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내 불만 찬 말에, 투명한 안경 너머 세상보기를 포기하고 얼어붙은 푸른 눈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이미 오래전에 시도했었고, 성공도 했는데, 되살아나버렸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갑자기 상의를 벗더니 소파에 던져버렸다. 그 안에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는 ‘좋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레벨은 4(Four: D)~5(Five: E). 역시 그녀는 예상대로 쿨하고 강했다.

“어딜 보고 있습니까. 제 몸만의 특징을 보세요!”

그보다 ‘큰’ 특징이 어딨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으나, 자세히 보니 그녀의 몸통 가득 문신이 그려져 있는 게 보였다. 갈겨 쓴 한자인지 애벌레가 기어간 흔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검은 문양이 꿈틀거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다.
글씨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계속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느리게. 마치 개미떼가 자기 집을 찾아가듯 그녀의 심장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가 뒤로 돌자 등에 거대한 만다라가 있었다.
만다라란 불교에서 ‘세상 모든 것’ 또는 그 본질을 상징화하여 만들었다는 복잡한 그림이다. 그걸 그린 문신에서 글씨들이 솟아나와, 어깨와 옆구리와 허리를 지나서 가슴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저는 강시입니다. 제 조국 중국에서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땐 다른 이름이었지만 그냥 중국이라 치죠. 하여간 거기서는 고향땅에서 죽지 못하고, 전쟁 때문에 타향으로 끌려가서 힘겹게 살다가 죽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원혼들을 불쌍히 여긴 술사들이 타향에 버려진 시체에 영혼을 불러 넣은 후 일으켜 고향에 데려다 준 후 묻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술식, 또는 시체가 ‘강시’지요.
그런데 이 강시가 다루기 편하고 상당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일부 술사들이, 싸우기 위한 개량된 강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한자 그대로 ‘얼어붙은 시체’였던 강시를,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더 강한 불사의 괴물로 만들어 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저입니다.

전쟁에 패한 소국의 귀족으로서 승전국 귀족의 노예 생활을 하다 자살한 저를, 제 등에 새겨진 술식으로 살려낸 겁니다. 죽어서도 노예가 되도록, 이미 끝난 자신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절망을 안기는 더러운 존재가 되도록.
하지만 웃기게도 제가 싸우지 않고 ‘환상의 무기’로서 있었던 100년은 그 나라가 흥성하였지만, 싸우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주변 국가들의 두려움을 사서 포위당해 망해버렸습니다. 제가 천만의 군사를 죽여도 뒤에서 백만의 군사가 수도를 박살내면 어쩔 수가 없지요.
저의 주인이었던 술사도 죽고 나라도 사라졌습니다.
자유를 얻었지요.

그러나 저는 스스로 뭘 하고 싶은 게 없는 시체일 뿐이었습니다. 친구도, 부모도, 만나러 가기엔 너무나 시간이 지나버렸지요. 그래서 썩지도 못하고 머나먼 땅의 산속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그때 여행객이었던 림피드님을 만나 지금의 제가 있는 겁니다.“

그녀는 다시 옷을 입기 시작했다. 단추를 채우는 동안 아무 말이 없다. 옛 기억이라도 곱씹고 있는 것일까?

“저기 말이야. 그럼 림피드도 비슷한 거야?”

“주인님은 뱀파이어라는 서양의 흡혈귀입니다. 워낙 유명한 종족이기에 설명은 필요 없겠죠. 동양의 흡혈귀인 저와는 거울에 비친 듯 정반대의 존재입니다.”

내가 힐끔 림피드를 쳐다보자 그녀는 자신의 눈에서 푸른색 컬러렌즈를 떼어냈다. 그러자 악어같이 위아래로 길게 찢어진 동공을 품은 붉은 눈이 드러났다.
영광의 금발과 사악한 마(魔)의 눈.
이야기에서 듣듯 악마와 괴물들 중의 귀족이라 불릴만한 박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 렌즈를 다시 꼈다.

“그럼 역시 십자가나 마늘, 햇빛에 약하던가 해?”

림피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십자가는 그걸 가진 사람의 마음의 힘을 구체화 시키고, 증폭시키기 때문에 건드리기 곤란하다능야. 마늘은 먹으면 열독(熱毒)이 올른다능야.
이건 한의학적인 이야기인데, 시나에게 듣길, 한여름에 마르고 열 많은 체질의 할아버지가 양기를 북돋아 준다는 인삼주를 마시면, 쓰러져서 열독 올라 죽는 사고가 가끔 있다고 하더라넴. 그게 몸의 기운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너무 양적으로 가면 양기가 폭주해서 병이 난다고 하더랑. 햇빛도 비슷하게 피부가 열이 올라서 화상을 입는다능야."

그 말에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 만화의 뱀파이어들은 그딴 거 다 소용없던데 실제는 아니라고 하니까, 과연 오리지널은 오리지널이구나 싶었다.
하긴 애초에 근거가 없었으면 약점에 대한 소문이 왜 났겠는가.

"그럼 루시는 뭐야? 또 유명한 괴물?"

이 질문에 시나는 으음~하고 신음했다.

"설명하기 어렵군요. 그는 좀 특이한 존재입니다. 신의 일부랄까, 천재지변에 가까워요. 그래요. 태풍이나 지진 같은 극적인 자연현상입니다. 죽이려 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며 언제나 존재해왔습니다.
단,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남을 언데드로 만들려는 습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저희 언데드와 비슷할 지도요. 일단, 리애니메이터(Re-animater)라는 특수 종족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같은 레벨의 존재가 또 한명 있긴 합니다만, 성질이 꽤 다르니 같은 건 아닌 것 같으니까요."

그 말은... 녀석은 아직도 살아있다는 말이었다. 과거에도 악을 뿌려왔고, 현재에도 있으며, 곧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 거란 것이다.
녀석과 영원히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질지도 모른다.
녀석은 무한한 기회가 있고, 나는 한 번만 져도 끝이다. 그다지 기분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럼 녀석을 없애는 방법은 전혀 없는 거야?"

"글쎄요. 루시는 몸을 제공하기로 한 자들의 신체로 전생합니다."

"그럼 제공할 사람이 없으면 죽겠네!"

내가 밝은 목소리로 말하자 시나는 어둡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되면 그 '루시'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우리 '올바른 언데드 생활 위원회'가 거기까지 몰아붙인 적은 있지만, 진짜가 된 그를 죽여보진 못했습니다. 여기서 죽인다면 어떻게 될 것 같긴 합니다만..."

안타까운 얼굴을 하는 그녀. 은근한 절망의 빛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장 궁금한 게 있었다.

"근데 그 올바른 뭐시기가 뭐야?"

"올바른 언데드 생활 위원회입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언데드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쉽게 말하면 경찰이랄까요?"

그 말에 림피드가 내 앞으로 달려오더니 잔뜩 들뜬 얼굴로 자신의 옷에 달린 붉은 완장을 내보였다. 전에 봤듯이 '풍기회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봐라. 봐라. 내가 대빵이라능야~."

후훙~ 하고 자랑스럽게 고양이 입 미소를 짓는 그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뱀파이어라면 아마 그녀가 연상인데다 위험한 괴물이기도 하지만, '그래, 그래, 좋겠네.'하고 어린애 다루듯 대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근데 왜 생활위원회인데 풍기회장이야?"

림피드는 싫은 데를 찔렸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건 생활회 밑에 풍기회. 복지회, 조정회 같은 조직이 따로 있기 때문이라능야. 하지만, 이 중에서 실질적 힘은 경찰의 형사계 역할을 하는 풍기회가 제일 센걸! 그러니까 내가 대빵이야!"

뿡뿡! 하고 볼을 부풀리며 화내는 림피드를 보고 시나가 조용히 웃었다.

"그런 소리 하면 또 조정회가 가만있지 않을 걸요? 재판에 법 적용을 이상하게 해서 우릴 골탕 먹일 거예요."

"으으으…. 조정회 녀석들!"

림피드는 생각만 해도 화병이 도진다는 표정이다. 저쪽 세계도 이래저래 복잡한가 보다.

"하여간 그럼 림피드가 언데드 중에 가장 센 거야? 실질적 대빵이라며."

내 말에 시나가 또 웃었다.

"그것도 아니죠. 우린 경찰이라고 해도 모든 언데드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도 아니어서, 단지 뜻있는 자들이 모여 만든 자율방범대 같은 겁니다. 여기 참가 안 한 강한 자들도 수없이 많고, 생활회 중에서도 주인님의 전투능력은 별거 아닙니다. 특히, 검은 날개의 창립자씨에 비하면야..."

그 말에 발끈한 림피드는 시나의 허리 부근에 매달려 그녀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라니! 모두 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니깐!"

"떨긴요. 모두 귀여운 어린애 취급하던데요. 저번에도 '아르케'가 주인님 완장을 숨겨놓고 놀려댔잖아요. 주인님은 울고요."

"아냐. 나, 센걸. 나이도 많은 편에 속하는 걸…. 모두 연장자를 바보 취급하고..."

림피드가 울먹인다.
나이 많은 거 맞나? 분명 저런 태도 때문에 모두 꼬마취급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뭐. 주인님은 '대결'타입이 아니라, '전쟁'타입이니까, 실제보다 몇 단계 아래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긴 하죠."

"후엥~. 억울해 죽겠어."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는 림피드를, 시나가 '괜찮아요, 괜찮아.'하고 달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림피드가 잠잠해지자, 시나가 '빨리 끝내버리고 집에 가죠. 이제 5분 뒤면 모든 게 귀찮아지는 종말 모드에 돌입할 것 같습니다.'라는 시선으로 우리를 보았다.

"그럼 안 될 놈은 죽었다 깨도 안 된다는 이야기로 돌아가죠."

에? 거기까지 돌아가나? 정말 두서없는 진행이다.
그보다 그 말에 뭔가 의미가 있었던 거야?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안 되는 놈은 대부분 의지가 약해서, 자신의 미래를 창조하지 못해서 안 되죠. 욕심만 많아서 망상만 해댈 뿐입니다. 시체가 언데드가 되는 데도 필수 요소가..."

시나는 말을 한참 하다가 뭔가 중대한 사실을 눈치 챈 듯 멈추었다.
사건의 실마리라도 생각난 건가?
그녀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하다.

"생각해보니…. 이 속담으로 언데드를 설명하고, 우리 소개를 하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다 해버렸군요."

"어이!"

아무리 귀찮아도 정신줄 손질 좀 하고 살아라. 치매 걸린 할머니도 이보단 낫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중 림피드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그녀의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차가 근처에 도착했다는 듯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난다.
지금까지 안주만 먹고 있던 선희가 다가와 같이 나가기위해 내 손을 잡았다.
설명회가 파장분위기다. 하지만 아직 묻고 싶은 게 산더미 같기에 빨리 묻기로 했다.

“저기 말야. 루시가 했던 말인데, 버스 째로 우릴 납치했던 이유가 너희의 시선을 병원에서 떨어뜨리려는 것이었고, ‘세례 받은 자’가 ‘장기 말’이란 걸 이용해서 누굴 데려갔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그에 림피드와 시나는 생각에 잠기더니,

“지금 선진씨와 친했던 사람. 모두 연락되나요?”

친했던 사람이라고 해도…. 선희와 가출한 뒤에는 돈 벌어서 독립하는 데 집중하느라 누구랑 놀아본 기억이 없다. 그 전에는 다른 동네에서 살았었다. 그쪽과는 못 본지 꽤 되었다.

“소중하다고 할 만한 사람이 정말 하나도 없나요?”

‘소중하다.’란 단어에 누군가 한 명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를 싫어하는 가정에 떠넘겨져서 괴로워하고 있던 때.
가장 힘든 순간에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었던 사람이 있었다.
처음 만남은 우스웠지만 자주 와서 장난치기도 하고, 인생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내가 알바를 시작하자 걱정돼서 따라 들어와 준 사람이 있었다.
최 나리.

시나의 핸드폰을 빌려 그녀에게 전화해보았다.
받지 않는다.
모르는 번호여서 스팸 전화 같은 건 줄 알고 안 받았을 수도 있다. 이번엔 집에 전화해보았다.
통화 중이었다.
조금 안심했다. 누군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참 지나서 다시 전화해도 통화 중이었다. 뭔가 이상하다. 머릿속에 불길한 그림이 떠올랐다.
누군가 침입하여 어질러진 집안.
수화기가 들려진 채 바닥을 구르는 전화기.
나리의 시체.

“주소가 어딥니까. 제가 가보죠. 귀찮기야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시나에게 주소를 가르쳐주니 의외의 대답을 했다.
그 집은 3일 전쯤에 가족이 몰살당하고 집이 부서졌다고 했다. 거기서 붕대 녀석과 처음 만났었다고 했다.
그럼 나리는 혼자 이 사실을 비밀로 한 채 도주 중이었다는 건가? 나처럼?
아니면, 우연히 한동안 친구 집 같은 데서 머물고 있었기에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는 건가. 그리고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건가?

“말도 안 돼. 나리와는 오늘 아침에도 만났었다고!”

“선진씨. 진정하세요.”

“진정하게 생겼어요?”

“그 나리라는 분. 마지막으로 본때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주실 수 있나요?”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나리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녀가 병문안을 와주었을 때.
그러니까 어젯밤 여동생이 습격 받는 사건이 있고, 병원에 실려 간 뒤의 아침. 림피드를 만나기 전의 일이었다.
링크
sinyagun 점점 진행이 되어가네요. 혹시 의견있으시면 덧글로 남겨주시어요. 그러면 저는 매우매우 감사하지요. ^^
11-08-26 06:17
아름빌라 아 이거 웰케 잼있지 .. ㅋㅋ
11-08-27 00:41
sinyagun ^^
11-08-27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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