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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작소설]죽은 음양과 소원을 걷는 자. 0화.글쓴이sinyagun
날짜 11-08-21 21:21조회1917

오. 주여, 내가 얼마나 오래 부르짖어야 하며,
주께서는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격렬하게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는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박국 1:2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아. 그러니까 내가 나를 구할 수밖에.




0화.

딩동 딩동.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현관문 밖에서 초인종을 눌러댔다. 그녀의 이름은 시나(Xina). 종족은 강시이다. 중국 퇴마사 같은 복장을 하고 있으며, 등엔 비석을 닮은 대검을 짊어진 황당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무답.

“올바론 언데드 생활위원회라는 데서 왔습니다만.”

-무음.

“역시 너무 늦었나. 쳇.”

그녀는 손날로 문고리를 내려쳐 잘라냈다. 난폭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흙 묻은 신발채로 실내를 범한다.
현관부터 이어진 핏자국을 따라가니 거실이 나왔다. 암흑에 잡아먹힌 공간. 육식동물의 입안처럼 피비린내가 지독했다. 씹다 만 고기처럼 시체토막들이 붉은 연못 속에 가득했다. 이 짓을 한 범인은 이미 도망쳤겠지. 머리가 정상인 녀석이라면 여기 남아있을 리 없다.
그녀는 미간을 찡그렸다. 현행범 체포로 빨리 끝내버리고 싶었는데.

“아~ 귀찮아. 이 시체 중 아무나 살아나서 다 말해주면 좋을 텐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중얼거린 시나는 밀린 여름방학 숙제를 눈앞에 쌓아둔 초등학생처럼 썩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더니, 등에 맨 대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꼭 망령든 사람처럼 칼에다 말을 걸었다.

“귀찮으니까. 네가 좀 조사해봐.”

손이 칼에 닿는 순간, 그녀의 앞에는 몸이 반투명한 백발의 소녀가 나타났다. 흰 비단 천을 몸에 엉기성기 두르고, 목에는 옥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는 게 귀찮으면 그 몸을 저에게 넘기라니까요.”

“몸 파는 여자는 다른데서 찾아. 난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놀고 싶으니까, 일단은 내 걸로 해둘 거야.”

“누가 100년을 뒹굴 거린 관구석폐인 아니랄까봐.”

“뭐라고?”

“아니요.”

백발의 소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에 가득한 붉은 추상화. 상당히 화려하다. 심장이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있을 때, 누군가는 천천히 몸이 다져졌고, 누군가는 목처럼 큰 혈관뭉치가 잘려나갔다. 근데 일격에 즉사한 것이 아닌데, 결박이나 몸싸움의 흔적이 없었다. 그 말은 범인이 피해자들과 잘 아는 사이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잘 아는 사람에게 당한 이들은, 죽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참 신도 부처도 없네요.”

“너, 그런 소리하면 지옥 간다?”

“저희가 지옥에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런 데가 있기는 한 거예요?”

시나는 입을 다물었다. 한 번 죽었던 적이 있는 자신이었지만, 사후세계를 보지는 못 했다. 세상엔 선악이란 없는 건지도 모른다. 심판이나 보상 따윈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저 이 세계가 ‘힘 있는 자에게는 천국, 힘없는 자에게는 지옥’인 것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녀가 생전에 죽고 싶을 정도로 체험했던 것은 그런 현실이었다.

“야. 아직도 조사 다 안 끝났어?”

“이게 제 일이에요? 만년 백수 폐인은 자기도 일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는 건가요?”

“배고파...”

시나는 쭈그려 앉더니, 바닥에 웅덩이진 피에 손가락을 찍고서 입에 가져갔다.

“우엑.”

그녀는 헛구역질을 하며 침을 뱉어냈다.
물론 피에서는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맛난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시나는 보통이 아니다. 흡혈귀의 일종인 강시이기 때문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맛있어야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탄산 빠진 콜라라에 소금과 마요네즈를 섞어놓은 것 같은 맛이 났다.
맛있게 하는 요소가 빠졌다.
생명력이 고갈되었다.
그것도 이정도 끔찍한 맛이 나려면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짜내야만 했다.
시나는 발로 피 웅덩이를 휘저어보았다. 일순 피가 걷히면서 뭔가 바닥에 그려져 있는 게 보였다.
마법진.
그것도 흔히 보는 별이 그려진 파마(破魔)용 마법진이 아닌, 육각형을 기본으로 한 사악한 물건이었다.

“헤에~. 뭐야 이거.”

시나의 빙산같이 백푸른 눈이 빛났다.
입술이 웃는다.
그녀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도망치려한 기색도 없고, 피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지 않기에, 사건이 일어난 지 꽤 시간이 지난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온도가 말해줬다. 이 피의 온도는 가장 맛있는 온도인 36.5도 체온에서 그다지 내려가지 않았다. 의외로 사건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시나는 집중하기 위해 대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칼에서 손을 떼자 백발 소녀의 모습도 사라졌다.
숨을 죽였다.
예민해진 청각에 주의를 기울였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방안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거기냐!”

시나는 굶주린 사자처럼 쿵쿵쿵 무거운 발소리를 내며 달려갔다.
굳게 잠긴 방문.
발로 차서 부수고 들어간다. 나뭇조각이 총알처럼 사방에 튀었다. 그러나 방안엔 어둠뿐, 아무도 없었다.
잘 못 들었나?
책이 가득한 선반, 핑크색 작은 침대, 노을 진 창문을 가리고 있는 커튼의 귀여운 모양새나 몇 개의 동물 인형이 여기저기 있는 걸로 보아 여자아이의 방이리라.
이상하다.
아까의 아수라장에서 여자애의 시체는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살아있나? 뼈까지 먹혀서 흔적이 없다? 혹은 그 애가 범인?
아니, 아니.
이상한 점은 좀 더 근원적 면에서 있었다.
시나는 우편으로 배달되어온 예고장을 받고 이곳에 왔다. 이곳에 오기위해 집의 위치를 알아보며, 누가 사는지도 간단히 조사했었다.
분명 이 집에 딸은 있었다. 하지만 과거형이다. 갓난아기일 때 죽은 것이다.
그럴 터인데 어째서 이 방은 방금까지 누군가 쓰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일까? 그 정보가 잘못 된 것일까? 아니면... 아기가 되살아나 언데드가 되었던 것일까?
아직 알 수 없다.
좀 더 주변을 둘러볼 필요가 있었다.

그때 벽면에 뭔가 잔뜩 붙어있는 게 보였다.
사진이었다.
어느 어린 남녀가, 오빠와 동생인 듯 사이좋게 웃고 있었다. 초등학생정도의 아이들이 따사로운 여름날에 호스로 물장난을 치거나, 산에서 잡은 곤충을 자랑하고 있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슬프게도 한다. 이 아이들 중 하나는 분명 이 살육공간에 관련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좀 떨어진 곳에서는 고등학생과 중학생으로 성장한 남녀의 사진이 있었다. 각각 교복을 입고 있다. 학교가 배경은 아니고, 어디 집안에서 찍은 것 같다. 뭔가의 기념인가?
이 남매는 커서도 여전히 사이가 좋은 듯, 어깨동무를 하고 V자 사인을 하고 있었다.
다만, 전의 사진들과 다른 점이 하나있다.
얼굴부분이 칼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는 것.
불길하다.
게다가 벽면 사진위에는 피로 커다란 선전포고문이 쓰여 있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괴물로 만들어 영원히 조련하겠어!’

그 아래에는 폭발하듯 마구 휘날린 필체로,

‘내 꺼야. 내 꺼야. 아무에게도 안 줘. 내꺼야. 다 꺼져. 다 필요 없어. 다 죽어버려!!!’

같은 문장이 피눈물의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광기와 저주.
많이 봐서 익숙해졌지만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오래보고 싶지 않았다. 바보 같다. 짜증난다.

“아. 싫다. 그냥 집에 갈까나.”

시나는 뒤돌아서더니 걷기 시작했다. 한 발짝 한 발짝 옮길 때마다 등 뒤서 들리는 숨소리가 거슬렸다. 짐승 같은 그 소리가 짜증난다.

“짜증난다고!”

시나는 뒤돌아 방바닥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폭음과 함께 충격으로 바닥이 으깨졌다. 파편이 튀어 올랐다. 거기 맞은 가구들이 박살났다.
엉망진창.
귀엽고 깔끔했던 방안이 한순간에 전쟁 후 폐허같이 되어버렸다. 시나는 주먹에 묻은 회색 돌가루를 불어 날렸다.
그 눈앞에,
옆으로 넘어진 장롱 문에서 한 손에 부러진 식칼을 든 소녀가 데구르르 굴러나왔다.
머리부터 배 부근까지 붕대를 잔뜩 휘감고 있다. 입에는 검은 배경에 흰 이빨과 혀가 그려진 마스크를 하고 있다. 얼굴은 볼 수 없지만, 붕대 사이사이 삐져나온 긴 머리칼로 그녀가 여자임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애초에 속옷밖에 안 입고 있으니 척보면 알 수 있었다.
짜증나 있던 시나도 그 이상한 꼴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야아. 나도 귀찮아서 만날 똑같은 옷을 입지만, 넌 아예 안 입어버리는 구나! 근데 붕대에 마스크는 뭐냐? 참 간지나네.”

시나가 비웃자 붕대소녀는 발끈해서 소리쳤다.

“제가 변태에요? 이렇게 입고 다니게? 단지 옷을 갈아입던 중이었다고요!”

상당히 변태 같아 보이지만 이런 독창성 있는 변태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시나는 뭐라 답하기 어려웠다.

“아니, 그보다 중요한 건 넌 끝이라는 거다.”

“에?”

“죽지 않을 만큼만 피를 뽑아서 주인님 몸보신 시켜드리고, 봉인소에 봉인해버릴테다.”

“주인님은 흡혈귀?”

“뱀파이어. 귀여운 어린애지. 한참 클 때니까 잘 먹어야해.”

“아. 수고하십니다.”

붕대소녀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근데 내 피를 다 뽑더라도 이런 짓을 한 이유는 좀 들어주었으면 해요.”

“싫어. 귀찮아.”

시나는 주먹을 풀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자비가 없었다.

“너, 너무해! 그럼 질문 하나에만 답해줘요.”

“답하기 귀찮지만... 질문이 뭔지 궁금해져버렸네. 말해봐.”

“그게 말이죠... 그게... 오빠를 오랫동안 외로움 속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동생이 오지않던 오빠를 찾아냈더니, 애인과 샤랄라 놀고 있는 거예요. 이 애인이란 애가 거짓말쟁이거든요? 그래서 그 애인을 벌주고 죽인 뒤, 오빠를 되찾아 잔뜩 사랑받으려하는 데, 이런 건 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야. 물음표가 중간하고 끝 2개잖아. 질문이 하나가 아니잖아. 그런 복잡한 말, 기억했다 답할 수 있겠냐!”

“...뭔 소리래? 질문 하나잖아요.”

“아아. 귀찮아. 머리 아파.”

시나는 다시 짜증냈다. 지금 질문과 또 다른 이유로 다시 짜증나고 있었다. 그건 붕대소녀의 태도 때문이었다. 피를 다 뽑고 오랜 세월동안 봉인시켜버리겠다는데, 녀석은 너무 여유로웠다. 마치,

-난 당신 따위에겐 절대 잡히지 않아.-

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녀를 향해 다시 걸어간다.

“괴력 언니야. 근데 내 생각엔 언니도 멋진 오빠를 만난다면 분명 저처럼 오빠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게 될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다음 세상에선 꼭 좋은 오빠의 여동생으로 태어나길 빌게요. 그럼 굿바이~♪.”

소녀는 손에 들고 있던 부러진 식칼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왜? 싸울 듯이 말하더니 자살을 하지?
목줄기 혈관에서 붉은 꽃이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밑동 잘린 나무처럼 힘없이 기울어지는 목, 그러나 눈만은 독사처럼 똑바로 시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입가에 잔인한 웃음이 걸쳐졌다. 소리 없이 언어를 토했다.

-죽.으.세.요.-

시체가 발열하며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수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머리가 젖혀지며 목의 상처가 벌여져 웃는 입모양이 되는 순간,
-
저녁노을에 물들어 있던 한 주택가가 폭발로 날아갔다.

링크
sinyagun 조금씩 소설 연재하려 하는데, 괜찮은 가요? 소설이 조금씩 올라와있는 게 보이기는 하는데, 장기연재같은 건 없는 것 같네요. 이런 종류의 창작게시판이 아닌건가! (덧: 지금 올리려는 건 딱 라노벨 1권어치랍니다.)
11-08-21 21:22
네오 오오 무지하게 재미있는데요? 저 이런거 좋아해요 ^^

조금씩 연재하는것도 괜찮습니다~
얼마든지 원하는 형태로 올려주세요~

다음거 보러 갑니다~

11-08-2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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