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어 난지 18번째 생일을 맞은 기념으로 학교의 야자 수업(야간 자율 학습)을 과감하게 도망쳤다. 내일 학교에서는 생일이라는 핑계를 담임에게 댈 생각이었다. 따라서 더 이상 걱정할 것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한번뿐인 생일을 학교에서 보낸 다는 것은 정말 생각만 해도 지옥이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는 왼손 손목에 찬 시계를 봤다.
‘4:30’
지금 학교에는 담임이 내가 야자 수업을 도망쳤다는 것에 화를 내고 있을 것이 분명 했고 애들은 야자 수업을 하기 전에 교실을 청소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안 봐도 머릿속에서 저절로 재생이 되는 비디오고 DVD다.
나는 집에 가면 오랜만에 생긴 시간을 뭐하면서 보낼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어느새 집에 빨리 가려면 꼭 건너야하는 삼거리에 도착했다.(여기서 건너지 않으면 엄청 길을 돌아서 간다.)
방금 내가 삼거리에 도착할 때 횡단보도의 신호가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에 다시 신호가 바뀌려면 시간이 있어야했다.
어제 부모님 몰래 컴퓨터를 하느라 졸려서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하품을 하던 나는 뒤쪽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짝!
나는 갑자기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동혁이가 손바닥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나는 동혁이가 손바닥으로 등을 때린 것을 깨닫고 화났다는 뜻이 담긴 눈빛으로 동혁이를 노려봤다. 하지만 동혁이는 ‘씨익’ 웃으며 나의 눈빛을 가볍게 넘겨 버렸다.
“이 자식아! 갑자기 때리면 어떡해. 놀랐잖아!”
“그러라고 한 거야.”
“…….”
내가 아무 말도 안하고 바라만 보자 어색했는지 동혁이는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려고 이제야 생각 난 듯 말했다.
“그런데 너는 오늘 야자 안하냐? 내일 담임한테 혼나는 거 아니야? 나야 뭐, 체육 특기생으로 대학가기로 결정해서 야자를 안 하지만.”
“내가 집에 간다는데 담임이 나를 막을 수는 없지.”
야자를 당당히 도망친다는 내 말에 동혁이는 아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아깝네. 나는 니가 오늘 학교에 남아서 고등학생의 청춘을 낭비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려고 했는데.”
동혁이는 분명히 이 말을 할 때 내가 약 오르기를 바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 나는 동혁이에게 맞은 부위가 아파서 팔로 열심히 맞은 부위를 문지르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나에게 무시당한 동혁이는 민망함을 없애기 갑자기 나에게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뭐하냐?”
“아…그게, 말이지.”
체질상 간지럼을 전혀 타지 않는 나는 동혁이의 간지럼 기습공격을 무덤덤하게 넘겨버렸다. 간지럼 공격을 당한 나는 동혁이에게 오히려 역으로 간지럼 공격을 했다. 그리고 그 공격은 대성공이었다. 동혁이는 나와 다르게 간지럼을 무지 잘 타는 체질이었기 때문이었다. 듣기로는 온몸에서 간지럼을 느낄 정도로 몸이 예민하다고 했다. 체육 특기생으로 대학을 갈려고 하는 놈이 어울리지 않게 말이다.
“푸하하하! 하…항복 내가 잘못했어.”
“오냐. 잘못한 것을 알고 있으니 특별히 오늘 이 형님께서 용서해주지.”
“형님은 개뿔….”
“뭐라고?”
“형님의 넓은 아량에 감사한다고요.”
동혁이에게 간지럼 공격을 하는 것을 멈춘 나는 횡단보도의 신호를 보았다. 어느새 횡단보도의 신호는 빨간불에서 파란불로 바뀌어있었다. 깜빡이는 파란불에 뛰어서 건너려는 순간에 오른쪽 발을 앞으로 내 딛는 순간 신호는 빨간불로 바뀌었다.
“…….”
“내일의 해는 내일 뜨는 법.”
“야. 그거 개그라고 한 거냐?”
“아니 조크.”
“헐…갑자기 겨울이 된 듯 추워지는데?”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에 비하면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은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어느 때 보다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려야한다는 울분을 지금 상황을 만든 동혁이에게 간지럼이라는 공격을 또 다시 함으로써 풀었다. 방금 전에 한 개그가 아닌 조크에 대한 너무나 춥고도 추운 말에 대한 것도 말이다.
“자…잘못했어. 형님 한번만 봐주세요. 푸하하하하.”
동혁이에게 응징을 하던 나는 어느새 와있었는지 두꺼운 안경알을 가진 안경을 끼고 있는 성일이가 나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찌르면서 말했다.
“성진아. 생일 축하해.”
그리고는 두꺼운 책 한권을 나에게 주었다. 묵직한 책의 무게에 나는 성일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고마워 성일아. 그런데 언제부터 와있었어?”
“동혁이랑 같이 왔었어.”
역시 성일이는 일부러 존재감을 들어내지 않는 한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성일이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혁이랑 같이 왔지만 동혁이가 나의 등짝을 때리는 기습을 하는 바람에 선물을 주는 기회를 놓치고 게다가 동혁이의 느닷없는 간지럼 공격 때문에 실랑이를 하는 통에 성일이가 이제야 적당한 타이밍을 잡고 나에게 선물을 준 것으로 추측이 되었다. 나는 성일이가 준 준책이 보통 책과는 다르게 두꺼워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책의 제목을 보았다.
‘알기 쉬운 현대 심리학.’
책의 제목을 본 순간 나는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 버렸다. 성일이는 내가 선물을 받고 감동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는지 평소에 잘 짓지도 않던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옛날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인데 정말 알기 쉽게 돼 있어. 중학교 때 이 책을 읽을 땐 밤새서 읽을 정도였어.”
매사에 적극적이지 않은 성일이가 이정도로 말할 정도면 분명히 재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았지만…….
“고…고마워.”
물론 전혀 쉬울 것 같지는 않지만…. 선물로 받은 책을 가방에 넣은 나는 동혁이에게 ‘너는 선물 없어?’ 라는 뜻이 담김 눈빛을 보냈다. 때로는 말로 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아도 뜻을 전달 할 수 있을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이럴 때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동혁이는 나의 눈빛에 난감함, 당황함 등이 섞인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나의 시선을 피하더니 갑자기 양쪽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혁이는 갑자기 웃으면서 말했다.
“성진아. 방금 전까지 내가 한 행동들은 전부 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행동이었어.”
저 말은 분명히 방금 생각해낸 거짓말이 분명했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표정하나 안변하면서 주머니에서 악력기를 꺼낸 동혁이는 나에게 주었다.
“짜잔! 남자라면 필수로 가지고 있어야 할 물건인 악력기~ 놀랐지?”
“어…정말 놀랐다.”
방금 전까지 동혁이 주머니에 있던 악력기를 선물로 받은 나는 ‘피식’ 하고 웃었다. 동혁이가 준 악력기는 오랫동안 사용했는지 손때가 잔뜩 끼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잘 사용할게.”
동혁이에게 선물을 받는 동시에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자 나는 집으로 가는 방향이 다른 동혁이와 성일이에게 손을 가볍게 흔들어주고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할 때였다.
빵! 빵!
갑자기 도로에서 들리는 커다란 경적 소리에 놀라 나는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고 할 때였다. 그리고…….
퍽!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었지만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화물차에 부딪힌 나는 그 순간까지 내가 어떤 상황에 처 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갑자기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갑자기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이 당황스러웠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늘을 날던 나는 중력의 법칙의 의해서 결국 햇빛을 받아서 따듯하게 데워져 있는 아스팔트에 추락했다. 떨어지면서 머리먼저 아스팔트에 떨어졌는지 뒷머리에서 뜨거운 액체가 나오는 것을 느꼈다. 뜨거운 액체는 분명히 나의 피일 것이다.
나는 온몸에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하고 도저히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하늘이 붉게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 하늘도 잠시 후에 사라져 버렸다. 검은 하늘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20XX년 10월 10일 나는 생일날에 죽음을 맞이했다.
2
“으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잠에서 깼다. 그 이유는 바로 악몽 때문이었다. 내가 횡단보도에서 화물차에 치여서 죽는 꿈. 그것은 마치 방금 전에 일어난 일처럼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았다. 꿈에서 나는 화물차에 머리가 치여서 공중을 날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 먼저 추락해서 죽는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머리를 만져보니 머리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나는 이마에 맺혀있는 식은땀들을 속으로 닦은 뒤 책상 위에 있는 탁상 전자시계를 보았다.
‘6:00’
내가 다니는 학교는 인문계이지만 0교시를 안하는 학교라서 여유가 있었고 집에서 학교가 가까워서 그런지 평소보다 30분은 더 늦게 일어나는 나였지만 지금은 방금 전에 꾼 악몽 때문인지 도저히 다시 자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으로 넘어졌다.
쿵.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평소에 일어나지 않았던 몸의 반응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분명히 악몽 때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넘어진 상태에서 다리를 몇 번 주무르자 이제야 제대로 일어나서 방을 나왔다.
아파트 11층에 살아서 그런지 내가 방에서 나올 때면 항상 거실에는 햇빛이 가득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깜깜했다. 화장실로 들어간 나는 불길한 악몽을 기억하지 않기 위해 얼음 같이 차가운 물로 세수를 했다. 너무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해서 그런지 머리에 두통이 있었지만 세수를 하고 얼마 안지나자 머릿속이 개운하고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수를 다하고 화장실에서 나오자 주방에서 코를 자극하나는 맛있는 냄새가 나오고 있었다. 우리 집은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는 관계로 아침은 각자 알아서 챙겨먹는다. 아빠는 회사 업무 특성상 자주 출장을 가는 게 일상이었고 엄마는 오전 늦게 출근하거 저녁 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내가 학교 가는 시간대에서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생 1학년인 성연이는 아침잠이 많아 늦게 일어나서 아침을 안 먹고 가는 것이 일상이었고 아빠는 지금 지방에 출장을 가계신다. 주방에는 엄마가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역시 엄마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요리하는 것이 바쁜지 당근을 썰다가 국을 확인하고 설거지는 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성진이 일어났니?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런데 오늘 무슨 날이에요?”
“오늘 누구 생일이게?”
오히려 나에게 역으로 질문을 하는 엄마였다.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설마 오늘 제 생일이에요?”
“이제 알았니? 어떻게 된 애가 자기 생일도 모르니.”
“뭐, 그럴 수 도 있죠.”
평소에 남의 생일, 각종 기념일, 부모님의 생일들을 귀찮아서 일일이 기억하지 않는 나였기에 어느새 내 생일도 까먹었었나보다.
나는 엄마가 지금까지 요리한 음식들을 봤다. 갈비찜, 돼지고기 볶음, 잡채, 미역국 그리고 떡국...생일에 떡국이라니. 나는 의야 함에 엄마에게 말했다.
“엄아, 떡국은 왜 하셨어요?”
“오늘 아침에 떡이 냉동실에 남아있길래 만들었지. 아마도 설날에 먹고 남은 떡 같은데 이참에 먹고 없애려고 버리기에는 아깝잖니.”
나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성연이도 잘 잤니?”
“네.”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성연이는 주방에 와서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주방에 있는 요리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우와~ 오늘 내 생일인가?”
“이 짜식아. 오늘 형님의 생일이란다.” “성진아. 식탁에 수저하고 반찬 좀 꺼내주렴.”
“성연아. 식탁에 수저 좀 놔라.”
나는 성연이를 부려먹으려고 성연이를 불렀지만 성연이는 이럴 줄 알았는지 화장실로 씻으로 갔다. 결국 나는 식탁에 수저를 놓고 덤으로 설거지를 다했을 때 성연이는 유령같이 다가와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야 이 자식아. 아직 엄마가 앉지도 않았잖아!”
평소보다 활기찬 아침이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아침이었다. 동복을 입기에는 아침이 너무 더웠고 하복을 입기에는 일교차가 심해서 저녁에는 추운 관계로 결국 춘추복을 입는 것으로 결정을 했지만 몇 걸음 안 걸어서 이마에서 땀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게 너무 더웠다.
“하아…….” 어떻게든 속이 꽉 막히는 답답함을 없애보려고 숨을 깊이 들이 마신 뒤 내뱉었지만 순간적으로 시원해질 뿐 더위로 인해 또 가슴속이 답답해졌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는 지금과 같은 날씨는 고문중의 고문이었다.
더위에 지쳐가면서 걷던 중 꿈속에서 화물차에 치여 죽은 횡단보도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꿈속에서와 같이 횡단보도에 도착하자 횡단보도 신호가 빨간불에서 파란불로 바뀌었다. 나는 꿈은 그저 꿈이라고 생각하고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몸은 따라 주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고 있었고 몸은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있었다.
춥다.
방금 전까지 더위에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 추위를 느꼈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겨우 발 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우읍.”
발을 횡단보도 앞으로 옮기자마자 뱃속이 더부룩해지더니 구역질이 밀려왔다. 나는 뱃속을 칼로 찌르는 듯 한 고통을 참으려고 했지만 결국 나는 구토를 하고 말았다.
“우웩.”
순식간에 뱃속에 있던 음식물들이 식도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길가에 걸어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어떻게든 구토를 멈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헉…헉….”
이러한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먹었던 음식들을 모두 토한 나는 손으로 입가에 묻어있는 침을 닦고 정신을 가다듬고 바로 앞에 있는 상가 건물의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세면대 앞에 있는 거울에서 비춰지는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정말 꼴사나웠다. 눈에서는 눈물과 코에서는 음식물찌꺼기, 입주위에는 위액과 섞인 음식물들이 잔뜩 묻어 있었다.
촤아아
세면대의 물을 튼 나는 맨 먼저 입에서 느껴지는 시고 쓴 위액의 맛을 없애기 위해 입을 헹궜고 이물질이 잔뜩 들어가 있는 코도 풀었다.
“흥.”
코를 풀자 코 안에서 이물질들이 빠져나가는 느낌과 목에 남아있던 찌꺼기들이 순식간에 올라와 코를 통해 빠져나갔다. 코를 3번 정도 풀자 이물질이 전부 사라지자 차가운 물로 세수를 했다.
횡단보도에서 화물차에 치여 죽는 꿈을 꾸더니 지금은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해도 몸이 거부를 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고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다. 결국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학교에 조금 늦더라도 길을 돌아서 가기로 결정했다.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조회가 끝남과 동시였다. 비록 아침조회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도착했지만 지각은 지각이었고 평소에 지각이란 것을 한 번도 안했고 집도 가까웠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에게 교무실로 끌려 간 다음 이번 지각 건에 대해서 잔소리를 잔뜩 들은 뒤 교무실에서 빠져나와 겨우 교실에 들어갔다.
드르륵…….
교실에 문을 열자 교실에서 떠들고 놀던 반애들이 모두들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반애들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교실 중간에 위치한 내 자리로 갔다. 이번에 짝궁이된 동혁이가 만화책 읽는 모습이 보였다.
“어…너 언제 왔냐?”
“방금…….”
뭔가 재미있는 만화책을 읽는지 방금 전까지 입가에 미소를 짓던 동혁이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너 집도 가까우면서 웬일로 지각을 다하냐?”“몸이 조금 안 좋아서.”
횡단보도에 가자마자 몸이 한겨울에 반팔 반바지만 입은 것처럼 추웠고 구토까지 해버려서 지금 몸 상태는 물먹은 솜처럼 안 좋았고 그 상태가 학교까지 오면서 더욱 안 좋아졌다.
나는 가방을 책상 옆에 달려있는 고리에 걸어 놓은 뒤 동혁이에게 말했다.
“동혁아. 나 잘게 무슨 일 있으면 깨워줘.”
“알았어.”
나는 책상위에 양팔을 모은 뒤 그대로 엎드려서 잤다.
“…진아…일어나.”
“으음…….”
한참 잠을 자고 있던 나에게 누군가 내 몸을 흔들면서 잠을 깨웠다. 방금 전까지 시간 모르고 자고 있어서 그런지 몸의 모든 감각이 둔해져 있어서 잠에서 완전히 깨어날 때 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암…컥….”
잠에서 깨어난 나는 크게 기지개를 키다가 과 호흡으로 인해 기침을 한 나는 어느 때 보다 빨리 잠에서 깼다. 기침으로 인해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을 닦은 나는 나를 깨운 사람을 보았다.
“성일아 왜 깨웠어?”
나를 깨운 성일이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표정으로 교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가리켰다.
“점심시간이야. 밥 먹으로 가자.”
“알았어.”
그런데 벌써 점심시간이라니…. 방금 전에 잠든 것 같았는데 시간이 정말 빨리 갔다. 자고 있었으니 그건 그렇다고 치고 매 시간마다 선생님이 들이 들어와서 수업을 했을 텐데 나를 깨우지 않다니…. 정말 놀랄 일이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나를 왜 안 깨웠어?”
“정말, 피곤하고 아파보였거든. 선생님들이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니 얼굴보고 아무도 깨울 생각 안하더라. 뒷자리에 앉아있는 나도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으니깐.”
“그래?”
자고 있는 내가 그렇게까지 아파보였을 줄 몰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자서 그런지 몸은 많이 괜찮아진 상태였고 뱃속에서는 오히려 빨리 음식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 구토를 하는 바람에 아침에 먹었던 음식들이 전부 몸 밖으로 나왔고 학교에 도착해서는 지금까지 잠만 잤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 느꼈지만 지금은 심한 공복을 느꼈다.
“그런데 동혁이는 어디 갔어?”
“니가 늦게 일어난다고 먼저 밥 먹는다고 급식실로 갔어.”
“그래? 빨리 가자. 조금만 더 늦으면 늦게 먹을 것 같아.”
내 예상은 적중했다. 우리학교는 1학년은 따로 2, 3학년은 같은 식당에서 급식을 먹는다. 그 덕분에 조금만 늦으면 급식을 늦게 먹는 것을 일상다반사였기 때문에 아주 빨리 가거나 아니면 일부터 늦게 가서 급식을 일찍 먹기도 했었는데 오늘은 다행히 식당에 자리가 많이 남았는지 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다행히 줄이 빠르게 줄어들어서 성일이와 나는 급식실 안으로 들어가서 급식을 받았다. 나는 급식을 받은 뒤 구석자리에 성일이와 같이 앉았다. 하지만 국을 본 순간 식욕이 확 떨어졌다. 새빨간 붉은 김칫국…. 마치 피와 같은 색 같았다. 결국 나는 급식을 먹지 않기로 하고 그저 성일이가 급식을 전부 먹기를 기다렸다. 성일이는 급식을 먹지 않는 나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몸이 갑자기 또 안 좋아졌다고 말하자 성일이는 납득을 한 듯 고개를 ‘끄덕’ 이고는 급식을 먹었다.
결국 점심에도 굶은 나는 매점에서 빵과 우유를 산 다음 점심을 대충 때웠다. 다행히 빵과 우유는 몸이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허기는 겨우 채울 수가 있었다.
“하암….” 학교에서 하는 모든 정규 수업이 끝이 나자 몸이 축 늘어지는 게 힘이 빠졌다. 교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니 시간은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5시부터 야자(야간자율학습의 줄임말)를 해야 하기 때문에 교실에는 청소당번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나는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있어야 된 다는 생각에 머리가 갑자기 아파오는 것을 느껴져 확 도망쳐버릴까 생각도 들었지만 꿈속에서 지금 시간대에 화물차에 치여 죽는 꿈을 꿔서 그런지 결국 학교에 남아있기로 결정했다. 대충 교실의 청소가 끝나자 나는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오전에 못 들었던 수업의 내용을 필기하기 위해 책상서랍에 손을 넣은 순간 내 책상서랍 안에 못 보던 물건 두 개를 발견했다. 바로 악력기와 두꺼운 책 한권이었다. 악력기는 손때가 묻어있었고 책은 ‘알기 쉬운 현대 심리학’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다. 꿈속에서 보았던 동혁이와 성일이의 선물이었다. 나는 ‘피식’ 웃고는 책 사이에 껴져있는 종이를 발견했다.
‘성진아. 생일 축하한다. 선물은 두고 갈게.’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친구들이었다.
‘딩동~딩동~’ 과 함께 2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언제 바뀔까?’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선물을 가방 속에 넣고 나는 친구들에게 빌린 문제지와 교과서 그리고 공책을 열심히 내 책들에 베껴 쓰려고 할 때 였다.
드르륵….
야자가 시작되는 종소리와 함께 교실에 들어오는 선생님 한분을 보고 나는 갑자기 오늘 야자를 도망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방금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은 바로 국어라는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김철수’ 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초등학교, 중학교, 지금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통점 중 하나는 어느 학교에나 별명을 가진 선생님들이 있었는데 김철수 선생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철수 선생님은 ‘교과서’ 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님이었는데 그 이유가 ‘철수’ 라는 이름이 교과서나 각종 영화 또는 소설 등의 인물로 많이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유도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로지 교과서로 수업을 나가는 수업.
이것이 김철수 선생님이 별명이 붙은 진정한 이유였다. 보통 다른 선생님은 교과서와 문제지를 동시에 병행하면서 수업을 진행하는데 반해 김철수 선생님은 오로지 교과서로만 수업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교과서는 필기로 인해 빈칸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고 심하면 어느 페이지는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 교과서만으로 수업을 하고 엄청난 필기를 하는데 정작 김철수 선생님의 책은 마치 새것처럼 깨끗하다는 점이었다. 즉 엄청난 필기의 정체는 김철수 선생님 머릿속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능을 치른 선배들 말에 의하면 김철수 선생님의 수업은 최고였다고 말했다.
김철수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자 교실에서 지금까지 떠들던 애들과 소설책, 만화책, 게임기 등으로 시간을 보내던 애들도 모두 김철수 선생님이 오자마자 책상 위에 교과서와 문제지를 펼쳤다.
나는 김철수 선생님과 눈을 안 마주치기 위해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철수 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성진 학생. 이제 아프지 않는가?”
“네.”
“그럼, 몸이 아파가지고 오늘 3교시 수업을 못들은 이성진 학생을 위해 오늘 국어 수업을 특별히 다시해주겠다. 모두들 교과서를 피도록.”
나 하나를 위해서 다시 오늘 수업을 해주신다는 김철수 선생님의 친절은 충분히 감동을 받을 만한 것이었지만 오늘 3교시에 열심히 수업을 받은 애들에게는 그것이 아닌지 나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저기…선생님. 굳이 번거롭게 수업을 해주시지 않아도 되는 데요….” “번거롭지 않다. 그냥 오전 수업을 다시 한 번 더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애들도 열심히 수업을 듣겠다고 교과서를 책상위에 펼쳐놨구나.”
“…….”
교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김철수 선생님은 이러한 분위기에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분필을 들고 폭발적이면서 엄청난 속도로 칠판에 필기를 쓰기 시작했다.
딩동~딩동~
지겨운 학교 종소리가 오늘 야자 수업을 끝낸다는 것을 알리자 옆 교실, 아래층 교실에서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학교에 울려 퍼졌다.
“오늘 수업 이 정도로만 끝낸다.”
야자 수업 내내 쉬는 시간 빼고 오로지 수업만 진행한 김철수 선생님이 드디어 교실에서 나가자 나도 학교에서 빠져나간다는 해방감에 가방을 챙긴 뒤 교실을 빠져나왔다.
학교를 빠져나온 나는 아침에 횡단보도에서 겪었던 일을 또 겪기 싫어서 오늘 아침 때처럼 길을 돌아서 가는 것을 택했다.
아침과는 달리 시원한 날씨에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까지 단숨에 걸어갔다. 아파트 입구로 가니 경비병 아저씨는 CCTV 화면을 보여주는 TV 앞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부녀회장님이 이 모습을 발견하면 1시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설교를 늘여놓을 상황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데 사람이 타고 있는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1층에 도착하자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에 탄 나는 11층을 눌렀다. 문이 닫히면서 또 다시 ‘덜컹’ 하는 소리가 나고 ‘끼리릭’ 하면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래된 아파트라서 그런지 엘리베이터도 불안한 소리가 자주 났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왔고 소리와는 다르게 지금까지 작은 사고도 하나도 안 났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11층에 도착하려는 순간 갑자기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춰버렸다. 나는 멈춰 버린 엘리베이터가 다시 작동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10분, 20분이 지나도 그대로 일뿐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나는 경비실에 연락하는 비상벨을 눌렀다.
삐익- 삐익-
쉬지 않고 눌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로 보아 경비원 아저씨가 아직까지 잠을 자는지 아니면 순찰을 나갔는지 나간 모양이었다. 아니면 비상벨이 고장이 났거나…….
파지직….
“…….”
계속해서 누르던 비상벨에서 연기가 나면서 고장이 나버렸다.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
쾅!
홧김에 엘리베이터 문을 찬 나는 이다음에 벌어질 일에 뒤늦은 후회를 했다. 엘리베이터가 또 다시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급한 마음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나는 ‘피식’ 하고 웃었다.
‘통화권 이탈’
이제는 헛웃음만이 입에서 나온다. 나는 엘리베이터 층수를 알려주는 조그만한 LCD 화면을 보았다.
‘10층…9층…7층…5층…’
내려가는 속도가 내가 느낄 정도로 빨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1층’ 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순간 나는 온몸에 얼음처럼 차가운 쇠막대기들이 몸을 꿰뚫는 것을 느꼈다.
3
“으아악!”
이번에는 엘리베이터에서 죽었다.
집에 가기 위해 탔던 엘리베이터가 추락해서 죽었다.
11층에 도착하는 순간 엘리베이터가 추락해서 온몸에 쇠막대기들에 꿰뚫려 죽었다.
죽음의 반복이다.
나는 죽었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깨어났다.
이제 지금이 꿈인지 현실인지 이제 구분이 가지 않았다.
“끄아악!”
갑자기 온몸이 꿈속에서 죽었을 때처럼 고통이 밀려왔다.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지금 당장 죽어버리고 싶다.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입으로 ‘꽉’ 깨물어서 겨우 겨우 고통을 이겨냈다. 온몸에 힘이 빠진 나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았다. 평소라면 어둡게 보였을 천장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노랗게 보일 뿐이었다.
“헉…헉….”
나는 애써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며 책상 위에 있는 탁상 전자시계를 보았다.
‘6:00’
똑같은 시간이다. 내가 화물차에 치여 죽을 때도 엘리베이터에서 추락해 죽을 때도 시간은 모두 ‘6:00’ 이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오늘이 내 생일인 ‘10월 10일’ 인지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찾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을 찾지 못해 짜증이 나려는 무렵에 항상 자기 전에 책상 위에 핸드폰을 놓아두는 버릇이 있는 것을 기억하고는 책상 위에 핸드폰이 있는지 찾았다. 다행이 평소에 책상 구석에 두던 핸드폰이 그 자리에 있었다. 핸드폰을 든 나는 날짜를 확인했다.
‘20XX년 10월 10일’
여전히 같은 날이었다. 화물차에 치여 죽을 때도 엘리베이터가 떨어져 죽을 때도 언제나 나의 생일 ‘10월 10일’ 이었다. 나는 이제 지금까지 꿈에서 일어난 일들이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마치 방금 전까지 일어난 일처럼 기억 속에 남는 일들 그리고 죽을 때 마다 느껴지는 생생한 고통…. 지금이 현실인지 아니면 꿈인지 이제 구분이 가지 않게 되었다. 지금이 꿈이라면 당장 깨어나고 싶었다.
나는 일단 씻기 위해 방을 나왔다. 방을 나오자 익숙한 광경에 ‘흠칫’ 했다. 언제나 이 시간대면 어두운 거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지금 보는 이 광경이 언제 동안 지속될지 몰랐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킨 뒤 나온 나는 주방에서 엄마가 요리를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방에 가니 역시나 엄마가 한창 바쁘게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성진이 일어났니?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네.”
한참 요리를 하던 엄마가 설거지를 시키기 전에 나는 싱크대에 잔뜩 쌓여 있는 설거지 거리를 전부 닦은 다음에 식탁에 수저를 놓고 음식들을 그릇에 담자 엄마가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암…안녕히 주무셨어요?”
“성연아. 내가 식사준비 다했으니깐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맨 정신으로 엄마한테 인사해라.”
“아…알았어.”
일어나자마자 씻고 오라는 말 때문인지 성연이는 놀란 표정을 짓고는 화장실로 갔고 엄마는 어떻게 성연이가 지금 올 줄 알고 말했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의 시선을 덤덤하게 넘겨버리며 나는 모른 다는 듯이 식사준비를 했다.
덜컹….
현관문이 닫히자 소리가 아파트 복도 끝까지 울려퍼졌다. 아파트 복도에는 밝은 햇빛이 복도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는데 눈이 부실 정도였다. 평소대로라면 좋은 날씨라고 말할 수 있는 날씨였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자 마침 엘리베이터가 13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 나는 아래층으로 가는 버튼을 누르려고 할 때 나는 버튼을 누르지 않고 멈췄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내가 있는 11층을 지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무의식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한 내가 한심해졌다.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그냥 계단으로 걸어서 내려가기로 결정한 나는 계단을 통해서 1층까지 내려오자 등에서 땀이 나고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다. 1층으로 내려오자마자 나는 경비실로 갔다. 경비실에는 경비원 아저씨가 한가로운지 경비실 안에서 조그만한 선풍기와 이름 모를 잡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저씨.”
“어...어 그래. 무슨 일이니?”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던 경비원 아저씨는 내가 말을 걸자 놀란 듯 말을 더듬으면서 나에게 빨리 말하라고 눈총을 줬다. 아마도 부녀회장님이 찾아왔다고 생각했을 것 같았다. 부녀회장님에게 최근에 근무를 소홀이 한다고 크게 혼나가지고 그런 모양이었다.
“어젯밤에 엘리베이터 탈 때 자꾸 ‘쿵 쿵’ 거렸거든요? 혹시 어딘가 고장 난 것 같으니 검사 좀 했으면 하는데요?”
“그래, 알았다. 지각하겠다. 빨리 학교가야지. 어서가.”
경비원 아저씨는 겨우 그런 일이냐는 표정을 지으며 포스트잇에 ‘엘리베이터 이상’ 이라는 것을 쓴 다음 경비실 벽에 붙여 놓았다. 이것을 본 나는 그나마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낀 나는 경비원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를 가려고 했다가 마음을 고쳤다. 어차피 이대로 학교를 가봤자 꿈이 신경이 쓰여서 공부도 제대로 못할 것 같았고 막상 집을 나오니 학교가기가 싫어졌다. 어차피 그다지 학교를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잘됐다 싶어서 집 근처에 있는 피시방으로 갔다.
미성년자가 출입이 가능한 시간이 9시를 맞춰선 간 나는 아침의 피시방이 이렇게 조용한지 몰랐다. 오후와는 달리 교복을 입은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 같이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피시방에 들어오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람은 교복을 입은 나를 보더니 인상을 살짝 찡그리더니 말했다.
“후불, 선불 어느 거 하실 건가요?”
“후불이요.”
아르바이트생은 나에게 카드를 주더니 앉고 싶은 자리에서 앉은 다음 카드 번호를 입력하라고 말한 뒤 카운터에 있는 컴퓨터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피시방 안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지만 밤을 새서 게임을 해서 그런지 충혈된 눈을 가진 사람이 제법 많았고 사람들 마다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침이라 사람이 없지만 조용한 곳이 좋았기에 구석에 앉은 나는 컴퓨터 본채의 전원을 눌렀다.
위잉-
컴퓨터가 켜지면서 나는 소리가 유난히 귓가에 남아서 울려 퍼졌다. 1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컴퓨터가 켜지는 소리가 나면서 완전히 켜졌다. 그런데 스피커의 볼륨이 크게 설정되어 있었는지 소리가 피시방에 울려 퍼졌다.
컴퓨터가 켜지면서 나는 소리가 피시방 전체에 울려 퍼지자 피시방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놀라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 듯 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고 바로 스피커 소리를 적당한 수준으로 줄였다. 그러자 그럼 그렇지 하면서 사람들은 시선을 나에게서 다시 모니터로 집중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스피커의 소리가 크게 높이고간 사람이 원망스러워졌다.
안 그래도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는데 방금 컴퓨터 켜지는 소리 덕분에 마치 날카롭게 날을 세우던 검이 너무 날을 날카롭게 세우다가 검 날이 얇아져 부러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애써 가슴을 진정 시킨 뒤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는 ‘스톤 크래프트2’ 라는 게임을 실행시켰다. 유명했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톤 크래프트’ 의 다음 시리즈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고 요즘 내가 푹 빠져있는 게임이기도 했다. 게임이 켜지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한 나는 대기 중이던 사람과 게임을 시작했다.
요즘 이 게임에 푹 빠져있는 나는 어느 정도 제법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상대는 내가 가소롭다는 듯이 나의 전략들을 예측하고 있었는지 나의 모든 전략들이 통하지 않았다.
따다…따다닥…따따다닥.
조용한 피시방에는 내가 마우스와 키보드만 두들기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주위에서도 열심히 키보드와 마우스를 두들기는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계속해서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다 상대방이 실수를 해서 내가 겨우 상대 전략의 허점을 잡아내고 승리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이제 조금만 밀어붙이면 승리를 확정지은 순간이었는데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에 전화가 왔는지 벨소리가 울렸다.
“앗.”
한창 게임을 몰입해서 하다가 갑자기 핸드폰 벨소리 때문에 순간적으로 흐름이 끓긴 나는 속수무책으로 상대에게 한순간에 밀려서 결국 져버렸다. 져버렸다는 것에 짜증난 나는 바지 속에 있는 휴대폰을 신경질적으로 꺼냈다. 결정적인 순간에 전화를 해서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은 사람을 더욱 기분 나쁘게 한 전화한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단단히 각오해야했다. 지금까지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 버릴 테니깐…….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휴대폰에 나와 있는 전화한 사람의 이름을 보고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부재중 전화 하동혁.
띠리링-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자마자 문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날라 왔다.
-야! 성진아 어디냐? 설마 오늘 학교 땡땡이치는 거냐? 성일이가 오늘 수업 필기 정리해서 빌려준다고 하니까. 몸이 아프거나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천천히 오래. 그리고 생일 축하한다.
도저히 미워 할 수 없는 녀석들이었다.
투두둑….
“아….”
갑자기 휴대폰 화면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갑자기 떨어진 물방울을 이상하게 생각한 나는 교복 와이셔츠 소매로 닦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물방울은 계속해서 휴대폰 화면에 떨어지고 있었다. 몇 번이고 휴대폰 화면을 닦던 나는 뒤늦게 휴대폰 화면에 떨어진 물방울이 내 눈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눈물이 겨우 멈추자 차분한 마음으로 동혁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학교는 못갈 것 같고 이따가 학교가 끝날 시간에 만나자. 어차피 오늘 야자 도망 칠거지?
띠리링-
문자를 보낸 지 1분도 안 지나서 답장이 왔다. 분명히 지금은 수업을 하는 시간이라서 수업을 받고 있어야 했는데...아마도 수업은 안 듣고 선생님 몰래 소설책을 읽거나 지금처럼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모양이었다. 지금처럼...
-어떻게 알았냐? 그럼 4시 30분에 횡단보도 앞에서 만나자.
“…….”
나는 동혁이의 답장을 받고 망설였다. 횡단보도는...꿈속에서 처음으로 죽는 장소였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만나야할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만나야할지...
-알았어. 그럼 그때 만나자. 그리고 담임한테는 나 아프다고 말해주고 내가 나중에 연락해준다고 해줘.
어차피 꿈속의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넘어간 난 결국 횡단보도에서 만나기로하고 답장을 보냈다. 어차피 꿈이었으니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서.
-OK
동혁이는 예상대로 수업 중에 공부는 안하고 문자를 주고받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답장은 빨리오니 좋았다.
“하아….”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과연 지금 현실이 과연 꿈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그리고 과연 나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는지…….
“앗.” 어두운 피시방에만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셨다. 아침부터 약속시간 가까이 피시방만 있었으니 약 7시간 정도 피시방에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방금까지 피시방에서 게임을 한 나는 점심은 피시방에서 컵라면으로 해결하면서까지 계속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니깐 오히려 게임을 하는 게 질릴 정도였다. 나는 왼손 손목에 차고 있는 손목시계를 봤다.
‘4:00’
약속시간까지 30분이나 남았다. 내가 있는 곳부터 약속 장소까지 느긋하게 걸어도 충분히 도착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가끔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동혁이와 문자를 한 이후로 전원을 꺼둔 휴대폰을 켰다. ‘띠리링-’ 소리가 나면서 휴대폰이 켜지자 부재중 통화를 알리는 소리가 연달아서 나기 시작했다. 부재중 통화를 알리는 소리가 끝나자 나는 지금까지 걸려온 통화들을 봤다.
‘담임 선생님’, ‘엄마’, ‘집’ 전화 통화가 걸려 온 곳은 주로 이 3곳이었다. 몇몇 모르는 번호가 있었지만 처음 보는 번호이므로 잘못 걸려온 전화인 모양이었다.
휴대폰을 만지면서 별다른 생각 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횡단보도 앞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도착하자마자 엘리베이터가 추락해 죽었을 때처럼 다행히 구토를 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아직 꿈속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모르지만 한번 죽었던 곳이라서 그런지 자연스레 긴장이 됐고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횡단보도에 도착시간을 확인하니 약속시간까지 5분 정도 남았기 때문에 나는 그늘진 곳에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방금 전까지 피시방에서 지겹도록 게임을 하고 왔으면서 여전히 재미가 느껴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던 도중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건너편을 쳐다보자 동혁이와 성일이가 어느새 왔는지 서 있었다.
띠리링-
바로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으면서 동혁이는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성진아 조금만 기다려라 신호가 바뀌면 건너갈 테니.
문자를 본 나는 동혁이가 갑자기 불쌍하게 보였다. 내가 없고 성일이랑 하루 종일 있느니 적잖이 심심한 모양이었다. 성일이가 워낙 말이 없고 표현을 잘 안하기 때문에 주로 나와 동혁이가 이야기를 주도했는데 오늘은 내가 없고 성일이와 있으니 얼마나 심심했을 건지 충분히 예상이 됐다.
언제나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냥 내가 무단횡단을 할까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에 횡단보도 신호가 마침 빨간불에서 파란불로 바뀌었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자 동혁이와 성일이가 반갑다는 얼굴로 횡단보도를 건너 오고 있을 때 불길한 생각을 들어 나는 얼른 도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빵! 빵!
내 불길한 생각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주위에 울려 퍼지는 커다란 경적소리와 함께 나타난 화물차가 동혁이와 성일이에게 그대로 부딪혔다.
콰직!
동혁이와 성일이가 부딪힌 화물차의 앞부분은 듣기도 싫은 끔찍한 소리와 함께 주위에 울려 퍼졌다.
화물차가 온다고 말할 시간도 없었던 찰나의 순간이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둘은 화물차에 부딪혔다. 피가 아스팔트 도로 위에 퍼졌다. 마치 내가 화물차에 치여죽는 모습을 내가 직접 보는 것만 같았다. 지금 일어난 일은 모두 나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만나자고 했어야 했다.
“하…하하하.”
미쳤다.
이 세상은 미쳤다.
애초에 ‘20XX년 10월 10일’ 을 반복하는 것 자체가 이 세상은 미쳤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화물차에 치여 도로 위에 쓰러져있는 동혁이와 성일이를 외면하고 달렸다. 그리고 죄책감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너 때문이다.
-이성진 네 놈이 하동혁이와 김성일을 죽였다.
-친구를 죽음에 빠트린 너는 살아있을 이유가 없다.
“아니야!”
쉬지 않고 달리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고 눈물이 앞을 가려도 나는 뛰고 또 뛰었다. 이렇게라도 뛰지 않으면 죄책감이 더욱 심해질 것만 같았다.
쉬지 않고 뛰어간 곳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였다. 나는 아파트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꼭대기 층인 20층까지 쉬지 않고 올라갔다. 이제 엘리베이터 따위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지친 몸을 이끌며 겨우 꼭대기 층에 도착한 나는 옥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은 ‘덜컹’ 하는 소리만 나고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안전상의 이유로 문을 잠근 것이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옥상에는 쓰레기 천지였다. 이사를 가면서 물건을 버리는 게 돈이 든다고 버리고 간 물건들이나 밖에 나가기 귀찮아서 버린 쓰레기들과 각종 가구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옥상의 쓰레기 더미에서 오랫동안 방치된 것인지 먼지가 본래 의자의 색을 모를 정도로 쌓인 철제의자를 발견한 나는 의자의 두 다리를 잡고 옥상으로 가는 문의 손잡이를 부시고 문을 발로 찼다. 하지만 문을 열릴 생각을 하지않았다. 결국 문을 의자로 절반쯤 부수자 옥상의 문은 결국 열리고 말았다.
휘이잉-
옥상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는 옥상의 난간 위에 섰다. 아파트 옥상 난간 위에서 본 지상은 조그만한 개미들이 살고 있는 세상 같았다. 모든 것이 조그만했다. 아파트 옥상에서는 동혁이와 성일이가 사고당한 횡단보도까지 보였다. 다시 죄책감이 가슴을 옮아 매는 것만 같았다. 나는 죄책감이 온몸을 지배하기 전에 결정했다.
자살하자고.
“정말….이 세상은 미쳤어.”
나는 아파트 옥상 위에서 뛰어 내렸다.
4
“…….”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역시나 언제나 봐도 지겹지 않은 캄캄한 방의 천장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언제나 책상 위에 는 전자 탁상시계를 보았다.
‘6:00'
3번째 죽음. 언제나 같은 시간이었다. 핸드폰을 열어서 날짜는 확인해보니 예상했던 대로 ‘10월 10일’ 이라고 써져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왔다. 이제 모든 것이 월래대로 돌아갔을 것이다. 화물차에 치여 죽었던 동혁이와 성일이는 살아있을 것이다. 아니 살아있어야만 했다. 나는 둘이 살아있는지 궁금해서 동혁이와 성일이에게 ‘살아있냐?’ 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1분도 안되서 동혁이에게 ‘어, 불만있냐?’ 라고 답장이 날라왔고 성일이에게는 ‘살아있어.’ 라고 5분 만에 답장이 날라왔다.
다행히 둘다 살아있었다. 아니 살아있어야 만했다. 지금은 바로 ‘10월 10일 오전 6:06’ 이니…….
파직-
무언가 머릿속에서 터지는 듯한 충격이 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졌던 모든 의문감과 생각들이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내가 매번 죽을 때 마다 세상은 늘 똑같았다. 주방에는 엄마가 내 생일이라고 요리를 만들었고 성연이는 언제나 내가 식사준비를 마칠 때면 세수도 하지 않고 주방으로 왔다. 날씨는 언제나 똑같았고 수업과 시간표도 언제나 똑같았으며 심지어는 교실에서 애들이 하는 행동들도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모두들 그냥 정해진 대로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인형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답답하고 무거웠던 가슴이 ‘뻥’ 뚫린 듯이 시원해졌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아니 변한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현실이 아닌 게 분명했다. 현실에서는 내가 죽었는데 계속 살아날 리가 없다. 분명히 이건 꿈이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사람이 아닌 인형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답답하고 무거웠던 가슴이 ‘뻥’ 뚫린 듯이 시원해졌다. 나는 죄책감 따위는 버리기로 결심했다. 이런 미친 세상에 살아가는 데는 죄책감 따위는 필요 없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주방으로 갔다. 주방에는 엄마가 내 생일이라고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한창 요리를 바쁘게 하던 엄마는 내가 주방에 들어오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요리를 만들면서 말했다.
“성진이니? 오늘 일찍 일어났네?”
“네, 그런데…엄마는 사람 맞으세요?”
엄마는 내 말에 얼굴을 찡그리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죄책감을 느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는 엄마의 탈을 쓰고 있는 인형이 얼굴을 찡그리면서 나를 쳐다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죄책감은 눈 녹듯이 듯이 사라져버렸다.
“성진아. 그게 무슨 말이니?”
“시끄러워! 언제나 똑같은 일이나 반복하는 인형 주제에! 나의 고통을 알아? 내가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죽어왔는지 아냐고!”
짝!
왼쪽 뺨에서 불에 대인 것처럼 아파왔다. 이유는 바로 엄마의 탈을 쓰고 있는 인형이 오른손으로 나의 왼쪽 뺨을 때린 것이었다.
기분이 나쁘다.
최악이었다.
“하? 때렸어? 인형 주제에?”
“이성진! 이 엄마는 니가 어떻게 죽어왔는지 몰라, 하지만 지금 그게 엄마에게 할 소리니? 당장 사과 못해!”
“시끄러!”
파직-
방금 전과 같이 때와 같이 머리에서 또 다시 터지는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러자 순식간에 고통은 머릿속에서 사라지더니 맑은 청량감이 고통 뒤에 찾아왔다.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충동을 실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야채를 썰던 도마 위에 놔둔 식칼을 들었다. 그리고 엄마의 탈을 쓰고 있는 인형의 심장을 향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찔렀다.
푸욱.
식칼의 손잡이를 타고 느껴지는 짜릿한 감촉과 함께 엄마의 탈을 쓰고 있는 인형의 몸에서 피가 댐이 무너지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때? 이제 나의 고통을 알겠어?”
“성…진아.”
이 말을 끝으로 엄마의 탈을 쓰고 있는 인형은 죽었는지 숨을 쉬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허무했다. 이렇게 죽어버리다니…….
“하…하하하. 정말 썩어버린 세상이야!”
“형! 미쳤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어…엄마를 죽이다니! 왜? 이유를 말해봐!”
내가 엄마의 탈을 쓰고 있는 인형을 죽이는 것과 동시에 성연이가 잠에서 깨어났는지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면서 화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무슨 짓을 했긴? 나는 아무런 잘못한 것이 없어. 나는 그냥 엄마의 탈을 쓰고 있는 인형을 죽였을 뿐이야.”
성연이는 내 말에 소리를 지르며 내게 달려와 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성연이 주먹을 피할 순간도 없이 맞고는 피가 강을 이루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의 위에 올라타더니 주먹을 휘두르며 말했다.
“형이 무슨 짓을 한지 알아? 엄마를 죽였어! 그런데 인형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마! 형을 낳은 엄마를 죽이다니 그게 인간으로써 할 짓이냐고!”
언제나 별다른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만 같던 성연이의 말은 나의 가슴을 도려내는 듯 한 고통을 줬다. 그리고 뒤늦게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줬다.
“성연아….”
“뭐?”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자.”
나의 위에서 나를 주먹으로 때리고 있는 성연이를 밀친 다음에 싱크대 서랍에 있는 과도를 꺼낸 뒤 내 목에 갔다 댔다. 그리고 방금 전에 내 손으로 죽인 엄마를 보았다. 이제야 내가 얼마나 잘못된 행동을 했는지 깨달았다. 방금 내가 한 짓은 성연이 말대로 도저히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이었다.
나는 엄마의 눈동자를 봤다. 아무런 원망이 담기지 않은 눈동자였다. 나는 결심했다. 죽기로 또 다시 죽어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자고...
나는 망설임 없이 손에 쥐고 있던 과도를 스스로 목에 찔러 넣었다.
“형!”
이 말이 내가 이번에 듣는 마지막 말이었다.
5
나는 나를 낳은 엄마를 내 손으로 죽인 다음 자살을 선택했다. 그 결과는 지금 쳇바퀴 돌아가듯이 다시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역시나 책상 위에 전자 탁상시계는 ‘6:00’ 를 가리키고 있었고 휴대폰을 보니 역시나 ‘10월 10일’ 이라고 화면에 나타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아도 같은 날을 반복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어느새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버릇 아닌 버릇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저번에는 나는 내 손으로 나를 낳아준 엄마를 죽이고 깨달았다. 아무리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현실이 아니든 맞든 결국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해서는 일과 안 되는 일이 있다고...
세상이 아무리 내가 살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나의 죽음을 바라고 똑같은 날을 반복하는 괴로움이 있을 지라도 나는 결심했다.
이런 세상과 싸울 것이라고.
그리고 이제는 속죄를 해야 하는 시간이다.
비록 다시 세상은 ‘20XX년 10월 10일 오전 6:00’ 로 돌아와 버렸지만 내가 저지른 일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나만 기억하고 있어도 나의 죄는 없어지지 않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난 뒤 방을 나왔다. 이제는 너무 많이 봐서 눈감고도 정확하게 도화에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본 어두운 거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손이 얼얼할 정도의 차가운 물로 세수를 했다. 차가운 물의 감촉이 얼굴 전체에 퍼지는 것을 느끼며 나의 다짐을 더욱더 굳건하게 가지고 나가자고 결심했다. 앞으로 세수는 수십 번, 수백 번은 더 해야 할 행동이었기에 나의 결심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의식으로 삼았다.
세수와 다짐을 한 나는 주방으로 갔다. 주방에는 언제나 반복되는 나의 생일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응어리 같은 게 느껴졌다. 눈에서 눈물이 날것만 같고 금방이라고 속이 시원해지도록 크게 한번 울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지금 눈물을 흘리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성진이 일어났니?”
나는 목이 메어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러한 나의 목소리가 이상했는지 엄마는 요리를 하다말고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았다.
“성진아. 지금 우니?”
“아…아뇨. 그냥 눈에 먼지가 들어 갔나봐요.”
“그러니? 엄마는 모르겠는데?”
엄마는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 미소를 보고 울 뻔 했지만 겨우 이를 악물고 참았다. 소매로 엄마 몰래 눈가를 닦은 나는 엄마가 혼자서 힘들게 요리하는 놔두지 않고 내 능력이 미치는 설거지나 정리 같은 것을 도맡아 했다. 그래도 이것이 도움이 됐는지 엄마는 평소보다 빠르게 요리하는 것을 마칠 수가 있었다. 성연이가 아직도 방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끝냈다. 아직도 방안에서 나오지 않은 성연이를 깨우기 위해 성연이의 방문을 두들겼다.
“으음….”
“성연아. 일어나서 밥 먹어라.”
달깍.
성연이가 깨어났는지 방문이 열렸다. 방금 전까지 잤는지 눈에 눈곱이 잔뜩 낀 산태였다.
“벌써?”
“그래, 빨리 세수하고 가서 밥 먹어.”
“알았어….”
저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아니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저런 모습이 보기 좋고 잘 어울린다.
학교에 간 나는 동혁이와 성일이와 잡담, 게임 같은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차피 들으나 마나한 수업은 듣지 않아도 되었다. 반복되는 날 때문에 수업은 언제나 진도가 똑같았고 그 때문에 오늘 수업은 이미 눈감고도 줄줄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외웠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김철수 선생님께 오늘 나가는 수업 내용을 다말하고 당당하게 책상에서 엎드려 자는 대담한 행동까지도 했다. 그때 내가 오늘 수업 진도 내용을 다말하자 김철수 선생님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이상한 표정을 짓는 바람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것은 내가 또 죽으면 나만 기억한다는 사실에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급식도 언제나 바뀌는 일이 없어서 언제나 똑같은 음식과 맛없는 급식을 먹기 싫어서 점심시간에 무단외출을 해서 학교 밖에 있는 식당에 갔었는데 마침 그곳 식당에 담임선생님이 계셔서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식당에서 벌을 받은 뒤 학교에 와서 또 반성문과 벌을 받았다. 하지만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어서 그런지 나만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듯 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니 나는 지금 ‘오늘’ 이라는 커다란 울타리에서 살고 있었다.
“또…인가?”
지금까지 나는 ‘20XX년 10월 10일 오전 6:00’ 를 끝없이 시작하면서 수많은 죽음을 맞이했었다.
화물차에 치여 죽고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추락해서 죽고 자살도 했었고 오후에 집에 도착했을 때 가스가 누출돼서 환기를 시키다가 위층에서 버린 담배꽁초가 환기를 시키던 창문에 들어와서 가스가 불씨 때문에 폭발해서 죽기도 했었고 아침에 학교를 가기위해 길을 걷다가 건물 옥상에서 떨어진 화분이 정수리에 정확히 떨어져 죽이고 했었고 학교를 땡땡이치고 동혁이와 피시방에 가던 도중에 전봇대의 전깃줄이 끓어져 수십만 볼트의 전기에 감전이 되어 죽기도 했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어이없게 죽었을 때는 집에서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있는데 비행기가 추락해서 죽은 적도 있었다. 그 외 끔찍하게 죽은 적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지금 또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났다. 매번 살아날 때 마다 지금까지 못해보고 안 해봤던 일을 도전해봤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부 실행해 버리자 나는 이제 아무런 의욕도 나지 않았다. 점점 세상과 싸우겠다는 목표와 의지는 점점 죽음을 반복하고 오늘을 반복하고 나자 오랜 기간 바람을 맞아서 풍화되어 깎여나간 바위와도 같았다.
나는 결국 침대에서 이제 어떻게 되는 말든 잠을 자기로 결정했다. 잠이라도 자고 있으면 어떻게든지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얼마나 잠을 잤는지 모를 정도로 잠을 잔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어야했다. 아니 일어났었다. 하지만 언제나 있어야할 당연한 것들이 없었다. 내가 누워있던 침대도 없었고 언제나 책상 위에 있던 전자 탁상시계도 나의 핸드폰도 컴컴한 나의 천장도 오랜 시간동안 사용해서 빛이 바랜 커튼도 게임할 때 마다 위태한 소리를 내던 나의 고물 컴퓨터도 사라져있었다. 그저 지금 어둠만이 있었다.
방향 감각도 잃게 만드는 완벽한 어둠이 나타나자 나는 이제 완벽히 나는 혼자가 되었다는 것에 공포와 고독을 느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어둠속에는 아무도 없었고 오로지 나만 존재했다.
나는 어둠이 두려워서 몸을 웅크렸다.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의 뱃속에서 웅크리듯이….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아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면 나 자신도 잊어버릴 것만 같은 고독만이 느껴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든 말든 이제 내가 누구든 그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어졌다. 이제 어느 누군가가 나의 옆에 있어 주길 바랄 뿐이었다.
어느 순간이었다. 한줄기의 빛이 어둠을 뚫고 나에게 비추어 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본능적으로 빛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빛은 의외로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었다. 게다가 점점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한줄기의 빛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필사적으로 빛을 향해서 뛰어갔다.
6
“이성진 어머님! 지금 이성진 학생이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네? 정말요? 정말이요?”
삑- 삑-
영화 또는 드라마에서 들을 법한 병원의 기계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평소에 눈을 뜨면 보이는 어둡고 칙칙한 내 방의 천장이 아니었다. 그보다 피곤한데 엄마는 누구와 예기를 하는지 내가 깨어났다는 것에 좋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내가 멀쩡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지금 누워있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팔을 들었다. 하지만 온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서 팔을 들리기는커녕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알아차린 거지만 이곳은 내 방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눈을 깔고 내리깔고 오른쪽 팔을 보았다. 오른쪽 팔에는 바늘 주사가 꼽혀있었고 온몸에는 붕대들이 두껍게 감겨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랐다.
“성진아, 무리 하지마.”
“어…어마…어더게 덴 이리에려…? (엄마 어떻게 된 일이에요?)”
입에서 내가 말하려고 하던 말이 생각과 달리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을 엄마는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내가 원하던 대답을 해줬다.
“한 달 전에 화물차에 사고가 났었어. 그리고 지금 막 일어 난거고.”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 였다. 목 보호대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조금씩 깨어나는 감각에 목에서 고통이 느껴졌지만 다행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일이 모두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에 나는 감사했다. 만약 이것마저도 꿈이었다면 나는 정말 미쳤을 것 같았다.
“나…짜. (날짜)”
이번에도 보통 사람이라면 알아들을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발음에도 엄마는 핸드폰을 꺼내서 나에게 날짜를 보여주었다.
“20XX년 11월 11일 am 11:48”
드디어 나는 ‘20XX년 10월 10일 오전 6:00’ 를 벗어났다는 것에 몸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은 상태라서 소리 내서 기뻐하지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 어느 때 보다 기뻤다. 아니 기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자 그 소식이 언제 학교까지 알려졌는지 친구들이 움직이지도 못하는 나에게 병문안을 왔다. 게다가 동혁이와 성일이에게 내가 생일날 선물을 받은 게 전부 선물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있는 관계로 나는 또 다시 선물을 받을 수 있었는데 동혁이에게는 손때가 전혀 묻지 않은 악력기를 받았고 성일이에게는 ‘알기 쉽도록 쓴 인지 심리학’ 이라는 책을 받았다.
(전에 받았던 선물은 전부 내 피가 묻어 있어서 전부 처분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고 성일이의 선물은 도통 어떤 센스가 있어서 이런 것을 주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6개월 하고도 21일이나 지나서야 언제까지나 침대 생활만 할 것 같았는데 겨우 재활훈련을 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기분이 날라 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를 치고 달아났던 화물차 운전기사가 나를 치고 달아난 뒤 바로 다음날 바로 경찰서에 자백을 했다고 들었다.
아직 나의 몸 상태는 이제 겨우 움직일 수만 있을 뿐이었고 재활훈련을 통해 원래 몸 상태로 회복을 하려면 아직 한참을 두고봐야한 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처음에는 눈앞이 깜깜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별 다른 일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그저 남들보다 늦게 움직이는 것이고 늦게 시작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가 가장 심각하게 걱정된다고 말해서 내심 걱정 했지만 내가 지난 한달 동안 꿈꿔왔던 끔찍한 것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졌다.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려고 마음먹었다. 이대로 침대에 하루의 절반을 지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모두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7
하늘의 성층권을 뚫고 솟아있는 어마어마한 거대한 크기와 높이의 마천루(摩天樓)는 마치 신에게 도전하는 듯한 모습을 자랑하는 듯했다. 이러한 마천루 꼭대기 층에서 지상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흰 머리카락과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 이슈웰 미티어 페리스엔트 박사였다.
이슈웰 박사는 마천루 꼭대기 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면서 흥분되는지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왼쪽 다리를 떨었다.
“크크크…정말 흥분되는군. 대단하지 않은가? 인간이 지구에 나타는 것이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찰나의 시간 밖에 되지 않지. 하지만 이렇게 벌써 인간은 신에게 도전을 할 정도로 성장을 했다니…정말 대단하지 않는가? 빌리안.”
“네, 이슈웰 박사님.”
진한 갈색의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한 젊은 남자 빌리안은 이슈웰 박사의 말에 특유의 무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하는 동시에 이슈웰 박사의 옆으로 서서 지상을 대려다보았다.
둘이 마천루 꼭대기 층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지상의 모든 거대한 건물들이 모두 조그만 한 점으로 보일 정도였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까마득한 높이를 가진 건물 그것이 마천루였다. 한참을 지상을 내려다보던 이슈웰 박사는 이제 흥미를 잃은 듯 뒤를 돌아서 자신을 또 다시 흥분시켜줄 실험체를 봤다.
사람의 머리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원통 안에 있는 하나의 뇌. 뇌를 제외한 모든 부분의 시신경이 잘려서 오로지 순수하게 ‘뇌’ 라고 말 할 수 있었다. 영양분을 공급하는 포도당에 있는 뇌에는 얇고 기다란 침들이 빽빽하게 박혀있었고 침들은 모두 전깃줄에 연결돼 있었고 전깃줄은 거대한 기계에 연결돼 있었다. 기계의 화면에는 한 남자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Lee Sung Jin'
뇌가 들어있는 원통에 써져있는 글씨였다.
이성진은 ‘20XX년 10월 10일’ 에 화물차에 치여서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의 부모는 깊은 잠에 빠져버린 이성진이 반드시 깨어 날 것을 믿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가도 깨어나지 않는 이성진은 부모를 지치게 했고 점점 병원비에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집안의 가세까지 기울어지자 이성진의 부모는 결국 이성진을 안락사 시키기로 결정했다. 그의 부모는 이성진이 죽는 마지막 순간이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도록 장기기증을 동의했다. 그리고 이성진의 장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 하지만 이성진의 부모는 몰랐다. 이성진의 뇌가 연구를 위해 쓰일 거라고는...
연구재료가 된 이성진은 남아있는 육체라고는 뇌만 남은 채로 수많은 시간 동안 온갖 실험을 당하면서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빌리안, 이성진의 눈과 귀를 재생시키게.”
“알겠습니다. 이슈웰 박사님.”
빌리안은 기계를 조작했다. 그러자 깔끔하게 잘려있던 뇌의 눈과 귀의 시신경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눈과 귀가 만들어졌다.
“박사님. 뉴런 활동이 시작했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실험체의 정신이 돌아 올 겁니다. 뉴런 활동을 정지 시킬까요?”
“아니, 이대로 진행해. 100년이 넘도록 인류에 기여한 크나큰 공로가 있는데 이번 기회에 과거에서 벗어나고 미래를 체험을 하게 해주자고.”
이렇게 말하는 이슈웰 박사의 눈은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실험과 곧 있으면 깨어날 이성진의 고통을 기대하는 순수한 광기였다. 이러한 이슈웰 박사의 모습을 빌리안은 두렵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박사님. 뉴런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아 깨어난 것 같습니다.”
“알았네.”
빌리안의 말에 이슈웰 박사는 괴기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뇌, 눈, 귀만 있는 뇌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마치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반갑네, 나는 이슈웰 박사라고 하네. 방금까지 행복한 꿈은 잘 꾸었는가? 지금 모습을 보니 꿈은 잘 꾼 것처럼 보이는 군 이성진. 참고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전부 ‘거짓’ 이라네, 전부 내가 실험을 했었거든, 그래도 속죄의 의미로 방금까지 행복한 꿈을 꾸었을 테니 좀 용서해줘…크크큭.”
하지만 눈과 귀 밖에 없는 이성진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눈꺼풀도 없는 눈만 이슈웰 박사가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되는지 ‘멀뚱멀뚱’ 뜨고 있을 뿐이었다. 주머니에서 조그만 한 손거울을 꺼낸 이슈웰 박사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성진에게 보여주었다.
부르르….
아무런 근육도 없는 뇌가 ‘부르르’ 떨었다. 이 모습을 본 이슈웰 박사는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이성진, 어떤가! 이제 과거에서 깨어나 현실에 도착했다네! 나는 자네를 온 세상에 알릴 것이네. 자네 같이 뛰어난 연구 성과를 준 것을 세상에 알려야 되는 것이 자네도 좋겠지. 하하하!”
광기에 찬 이슈웰 박사를 보면서 이성진은 앞으로 펼쳐질 고통에 두려워하며 빌고 또 빌었다. 지금 이 순간이 방금과 같이 꿈이기를 빌면서...
2118년 10월 10일 이성진의 악몽은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8
100평이나 되는 커다란 방에 크기가 2m나 되는 커다란 캡슐들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게다가 방의 벽, 천장, 바닥이 모두 하얀색으로 되어있어서 더러운 것을 거부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쉬우웅-
방안 오른쪽 맨 끝 구석에 있던 캡슐이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렸다. 캡슐이 안에는 이제 갓 성인이 된 듯한 옛 된 얼굴을 가진 한 남자가 잠들어 있었다. 남자는 캡슐이 완전히 열리자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난 남자는 머리에 쓰고 있던 헬멧형 기계를 벗고는 캡슐을 빠져나왔다.
뿌드득- 뿌드득-
캡슐에 나오자마자 남자는 뻐근한지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남자가 몸을 풀고 있을 때 사람이라고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와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성이 남자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성진 님. 체험은 어떠셨습니까?
여성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사람의 목소리라고 보기에는 어색하고 이상한 기계음이 섞여 있었다. 이성진이라고 불린 남자는 여성의 말에 얼굴을 살짝 찡그리면서 말했다.
“뭐야? 로봇인가? 아무튼 짜증났어. 아무리 내가 생각해낸 이야기라고 해도 막상 겪어보니 끔찍하더라고.”
-이성진 님의 소중한 의견 감사드립니다.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은 바로 앞에 보이는 문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알았어…. 돈은 언제 송금되지?”
-문을 나가시는 순간 송금이 됩니다.
이성진은 뭔가 찜찜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방을 빠져나왔다. 방이 있던 곳은 안과 어울리지 않게 어느 허름한 건물의 2층이었다. 복도에 있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인상을 찡그린 이성진은 뒤를 자신이 나온 문을 보았다.
-자신이 만드는 가상현실 이야기 체험단 모집.-
“아무리 생각해봐도 욕 나올 정도로 끔찍했어.”
혼잣말을 한 이성진은 건물 밖을 보았다. 건물 밖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질서 정련하게 걷고 있었다.
“젠장, 이제 다시 재미없는 세상 속에서 살아야 되는 건가?”
모든 것이 획일화 된 세계. 이것이 현재 이성진이 사는 세계였다.
다시는 이 글이 올라오는 일이 없을 겁니다...힘들다...
반전에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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