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 당시 일곱 살이었던 소년에겐 밤마다 찾아오는 정체모를 존재가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것은 기다란 백발과 새빨간 눈동자를 가진 15살 소녀의 모습에서부터, 하얀 비늘이 덮여있는 몸을 가진 거대한 형체까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부적이나 각종 술법 등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온갖 능력을 이용해 소년을 즐겁게 해주려 했다.
어쩔 땐 잠이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소년을 위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소년의 곁에 앉아 잔잔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또는 간단하면서도 소년이 재미있어할 만한 놀이를 궁리해주기도 했다.
그럴 때의 그것은 천진난만한 소녀였다. 소녀가 소년에게 무언가를 해 줄 때마다 어린 소년의 심장은 신나게 요동쳤다.
소녀가 떠나기 직전, 소년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소녀를 안아주려 했다. 그러나 소녀는 그대로 소년을 밀어냈다. 가볍게 떨쳐내는 정도의 몸짓이었지만 그것은 분명한 거부의사였다.
그리고 소녀는 소년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착하지 않아.”
그 단호한 말에 소년은 고개를 저으며 맹렬히 부정했다.
“아냐! 그럴 리 없어! 난 네가 제일 좋단 말이야!”
어린 아이의 떼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듯 소녀는 금세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그 순간 불길한 예감이 소년의 머릿속을 언뜻 스쳤다. 이대로라면 소녀를 영영 보지 못할지도 몰랐다.
소년은 얼른 소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가만히 자신의 볼에 가져다 대었다. 그 손의 감촉은 여느 인간보다도 따뜻하고 보드라웠다.
“가지 마, 응?”
소녀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소년은 소녀의 손을 더욱 세게 쥐었다. 소녀가 자신에게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소녀는 소년의 손 안에 갇혀있던 손을 가만히 빼내더니 미소를 지었다.
또 만나.
소녀가 입모양만으로 살짝 말했다. 그러나 소년은 소녀가 말한 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소녀가 떠난다는 것이 두려웠을 뿐이었다.
소녀는 다정한 얼굴로 소년에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줘. 곧 돌아올 테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소년이 잡았던 하얀 손에 백색의 비늘이 덮였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소녀는 웃는 얼굴을 다시 한 번 소년에게 보여주었다.
잘 있어.
파충류 특유의 비늘 틈에서 유난히 붉었던 눈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모습을 감춰버렸다.
그 후로 소년은 소녀를 볼 수 없었다. 잠이 잘 오지 않는 밤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소녀를 기다려보기도 했다. 아무리 기다려 봐도 소녀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소년은 소녀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엔 마음과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소년 자신이 스스로 걸어둔 최면일 뿐이었다.
구름에 가려진 거대한 섬이 천공에 떠 있었다.
섬의 중앙부에 위치한 천궁(天宮) 내부는 평소와 달리 조용했다. 현재는 오직 두 명만이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용상(龍床) 아래 서 있는 길고 흰 머리칼의 소녀, 그리고 용상 위에 앉아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
잠깐의 침묵 후, 소녀의 하얀 도포자락이 가볍게 팔락였다. 소녀는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용상 위의 ‘그’에게 말했다.
“여기에 계속 있는 것보단 차라리 그게 낫겠지요.”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도 이 말엔 납득하고 있는 것이리라.
소녀는 가만히 고개를 까닥여 보였다.
“저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아요.”
그것은 ‘그’를 향한 이별의 표시였다.
“···어떠한 일이 없는 한, 다시는.”
소녀가 떠나자 ‘그’는 자신의 옆에 있던 ‘그녀’를 불렀다. 그리고 ‘그녀’에게 명령했다.
보호하라. 그리고 감시하라.
어둠이 내리깔린 골목 사이, 검은 야구 모자를 쓴 한 명의 소녀가 궁지에 몰려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소녀는 ‘그것’을 볼 수 있는 자신의 눈을 원망했다.
‘그것’은 검은 연기로 만들어낸 장검을 들고 소녀를 향해 천천히 거리를 좁혀왔다. ‘그것’의 초점 없는 눈동자는 오직 소녀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순간, 소녀의 검은 재킷에 감춰져 있던 은빛 단검이 번쩍 빛났다. 동시에 ‘그것’의 목이 서걱 베였다. 갈라진 틈 사이로 피 대신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실수했다. 본래대로라면 목이 단번에 잘려나가야 했다.
그래도 소녀는 동요하지 않았다. 날을 바깥으로 향한 단검을 몸 가까이 붙이고 상대의 반격을 기다릴 뿐이었다.
예상대로 ‘그것’은 장검을 들어 반격해왔다. 소녀의 단검도 흔들림 없이 ‘그것’을 향해 돌진했다.
그와 동시에 골목은 정적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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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쓰고 있는 글은 200자 원고지 300장 좀 넘었습니다.
이건 그 일부분일뿐이죠 =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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