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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녀망상 이미지네이터 ~사계편~ 봄(3/3)글쓴이Sourjelly
날짜 11-05-09 16:55조회2003
Chapter 2. 행간_It is an intersection

모란고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소리는 언제나 지루하기 짝이 없는 ‘딩동뎅동’이다. 왜 딩동뎅동 하고 울리냐고 묻는다면, 국사선생님의 애증과 수면제가 담긴 모란고의 역사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더 이로울 만큼 재미없는 이유 때문이다.

바로 모란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지독한 구두쇠이기 때문이지. 쓸 수 있다면 못쓸 때까지 쓰자-라는게 모토인 교장선생님 덕분에 10년 전까지만 해도 교장선생님이 직접 복도를 돌아다니며 종을 치던 모란여고는 얼마 뒤 폐교된 인근 중학교에서 공짜로 얻어온 스피커와 방송장치를 달았다. 그것이 이 단조로운 종소리의 근원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시껄렁한 이유가 승준을 사지에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바로 지금처럼.

-딩동뎅동
“아 씨발 꿈!!”

귀청이 찢어지도록 날카로운 종소리는 책상에서 엎어진 채 입가에서 침을 흘리며 자고 있던 승준을 벌떡 일으켜 세운다. 점심을 먹으러가거나 운동장, 매점, 클럽으로 놀러가는 분주한 아이들 속에서 팔등으로 침을 닦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승준. 그는 조금 전까지 망상체와 싸우고 있었던 일이 모두 꿈이라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다.

『쁘루쁘르쁘르쁘르뿌르쁘….』

책상 앞에 앉아서 썩은 동태눈으로 주변을 살피는 승준의 손가락을 톡톡 건드리는 작은 덩어리가 있다. 윤기 있는 검은 면발이 먹물로 데친 스파게티를 연상케 하는 이 망상체는 조금 전까지도 승준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녀석이다.

“어-.”
『쁘루쁘루?』

짜파게티는 책상 한 구석을 차지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승준을 올려다본다. 덕분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승준이 겨우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었다. 요컨대 그가 겪었던 모든 일이 꿈이 아니라는 소리다.

-쿵쾅쿵쾅쿵쾅-덜컹!!
“선배애-!!”

교실에서 부리나케 뛰쳐나와 망상체 연구부실 문을 뜯어내듯 열어젖힌 승준이 비명을 질렀다.

“아, 승준아. 어서 오렴.”

막 부실로 돌아온 것인지 금순이가 건네주는 찻잔을 받고 소파에 앉는 선배가 승준을 반겼다.

“역시 꿈이 아니었던 거죠?”
“음~ 꿈이었으면 내가 알고 있을 리가 없지 않니?”

차분하게 되묻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선배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다. 해명을 요구하는 승준의 썩은 눈빛 공격은 선배의 무색에 가까운 오오라에 상쇄되어 사라졌다.

“몽상공간(夢想空間)이야.”

찻잔을 내려놓는 선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꿈이지만 꿈이 아닌 세계. 누군가의 희노애락, 감정의 극대화가 현실을 토대로 망상과 뒤섞여서 만들어진 꿈속의 세계야. 아마도 승준이 너 아니면 네가 안고 다니던 그 애가 꿈결에 만든 공간이겠지?”
“전 잠든 기억도 없고 단지 화장실을 다녀왔을 뿐인데요.”

무엇보다도 짜파게티에게 시달리느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폭발직전까지 갔던 승준이 저절로 잠들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 그러면 네가 업고 있던 그 애의 몽상공간이겠구나. 음- 그나저나 몽상공간을 눈치 챈 사람이 간접적으로 끼어드는 경우라면 몰라도 다른 누군가의 몽상공간에 저절로 편입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둘이 무슨 각별한 사이야?”
“에에이~그건 아닌데요.”

선배의 말에 쑥스러워진 승준이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자, 선배도 웃으며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선배는 어떻게 몽상공간이라는 걸 알고 계시는 거예요? 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휘말렸는데.”
“이 아이들이 알려 줬으니까.”

선배가 ‘이 아이들’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순간 선배의 주변으로 망상체들이 모여든다. 금순이, 인순이, 봉선이, 은미의 뒤통수를 툭툭 치던 거인 망상체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헤실헤실 웃고 있다.

“아, 그나저나 승준아-.”

망상체들의 머리(혹은 손)을 한 번씩 쓰다듬어주고 돌려보낸 선배가 승준을 빤히 쳐다본다. 그녀의 시선에 부담을 느낀 승준이 몸을 뒤로 빼지만, 선배는 여전히 승준 주시하고 있다. …정확히는 승준의 머리에 고정되어 있다.

“그 머리 잘 어울린다.”
“엥?”

그제야 자신의 머리 위에 달라붙어있는 존재를 눈치 챈 승준. 그는 손을 들어 머리 위의 짜파게티를 움켜쥐고 끌어내린다.

“너 임마. 언제 올라가 있었냐.”
『쁘루쁘루!』

눈알을 뒹굴뒹굴 굴리며 사방을 둘러보던 짜파게티가 맞은편의 선배와 눈이 마주친다.

“………….”

선배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일말의 주저도 없이 승준에게 다가가 그의 손 위에 있는 짜파게티를 끌어안는 선배. 그리고 이어지는 선배의 돌발행동에 승준이 경악한다.

“…선배? 지금 뭐하세요?!”
“집에 가져갈 거야.”
“아니 가져갈게 따로 있지! 그보다 왜 하필 주머니에요?! 들어가지도 않잖아요!”

조그마한 치마주머니에 두 손 가득 들어오는 짜파게티를 집어넣으려는 선배. 그녀의 치마주머니가 터질듯이 볼록한 가운데, 면발의 절반 이상이 밖으로 삐져나와있는 불쌍한 짜파게티가 눈알만 뒹굴 거린다.

『쁘루쁘루쁘르~』

승준의 손에 의해 구출 된 짜파게티가 그의 팔을 타고 어께에 올라탄다. 자신의 손을 벗어난 짜파게티를 보며 내심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선배. 그녀는 승준이 내미는 종이걸레를 가장한 입부 희망서를 받아들면서도 짜파게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후후, 그래도 가져왔네.”
“뭐, 약속은 약속이니…저를 보고 말하세요. 본체는 이쪽이라고요!”

승준의 어께를 타고 반대쪽 어께로 돌아가는 짜파게티를 따라 선배의 얼굴도 이리 저리 흔들린다. 짜파게티를 들고 선배의 시선 밖으로 이리저리 숨겨보는 승준.
그는 결국 안 되겠다 싶어서 망상체 연구부실 밖으로 도망친다.

“아아아…!!”

부실 밖으로 도망치는 승준의 뒷모습을 보는 선배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만 터져 나왔다.




“나, 원 참. 기껏 입부했더니 이게 뭐야.”
“그런 찬밥 대접을 받았단 말이야? 심하네.”

티셔츠에 청바지차림으로 앉아있는 승준과 그 옆에서 같은 셔츠에 타이트 팬츠차림으로 누워있는 승희. 별이 반짝이는 이 늦은 밤에 두 사람은 거실 TV 앞에서 뒹굴 거리며 낮에 있었던 일로 이야기를 꽃피운다. 망상체에 관한 일은 적절하게 생략하고 말이다.

“그냥 다른 동아리로 이적하지 그래? 일단 자리가 빈 동아리로 갈 수 있잖아.”
“눈치 보이잖아.”

과자를 오물거리며 다른 동아리로 옮기라는 승희의 말에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승준. 사실 그는 아무래도 좋았다. 망상체라고 해서 무섭고 짜증나고 괴롭기만 할 줄 알았건만, 슈퍼 히어로처럼 괴물을 상대하던 자신의 또 다른 모습도 발견하고 여러모로 즐거웠기 때문이다.

“딱히 갈 만한 동아리도 없고. 그냥 여기 다니지 뭐.”

목적 없이 틀어놓은 TV는 토요일과 일요일의 날씨를 예보하고 있다. 비가 오는 것을 보면 우산 챙기고 날이 맑으면 우산 접는 성격인 터라 딱히 날씨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승준으로서는 그저 따분하기 짝이 없는 일기예보지만, 머릿속에 꽃놀이 갈 생각이 가득한 승희는 달랐나보다.

“일요일까지 맑겠습니다만, 월요일부터 강한 바람을 동반한 폭풍우가 내릴 예정입니다.”

기상 캐스터 말에 입으로 가져가던 감자 칩을 떨어트린 승희. 그녀의 시선은 월요일와 비구름 그림에 고정되어있다.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획표를 수정한 그녀는 승준을 올려보며 말했다.

“쭈나, 이번 주 일요일에 꽃놀이 가자.”
“싫어.”
“왜애~? 집에서 뒹굴 거리는 것보다는 낫잖아?”

발을 동동 구르며 떼를 쓰는 승희의 말을 “귀찮아.”로 일축한 승준이 길게 하품을 하자, 승희의 뺨이 복어처럼 뿌루퉁하게 부풀어 오른다.

“그렇지만 봄꽃축제 이번 주가 마지막이란 말이야! 비오면 꽃 다 떨어진단 말이야! 핫바도 파는데! 대학 밴드도 온다고 했는데-에-!”
“그래봤자 우리 둘 밖에 안 갈 거잖아.”

승준네 부모님은 늘 바쁘다. 휴일 없이 밤낮으로 나가서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종국에는 승희와 단 둘이서 꽃놀이를 가게 될 것이 분명하기에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풀이 죽어서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승희를 본 승준은 내키지 않는 결정을 했다.




“꽃놀이?”
“예. 이번 주말, 그러니까 내일이네요. 내일 모란고 뒷산에서 대학주최 봄꽃축제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말인데…선배, 제발 부탁인데 이쪽을 보세요. 제 얼굴은 여기 있거든요?”

승준의 허리춤을 따라서 나선으로 승준의 어께까지 뱅글뱅글 돌며 기어 올라가는 짜파게티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선배. 보다 못한 승준이 짜파게티를 자신의 머리 위에 얹어놓자, 선배와의 시선이 얼추 비슷하게 맞춰진다.

『쁘루쁘루, 쁘루뿌르!』

승준의 머리에 찰싹 달라붙어서 면발을 늘어트린 짜파게티가 선배를 마주본다. 선배도 꽃을 틔우는 오색 오라를 풍기며 짜파게티를 쳐다본다.

“그러니까 꽃놀이 갈 때 선배도 오셨으면 해서요.”
“물론이야. 나도 꽃 좋아하니까.”

기쁘게 승낙하는 선배의 손이 승준의 머리위로 향했지만, 그 전에 승준이 먼저 돌아섰다. 망상체 연구부실은 부실을 나서는 승준의 등을 바라보며 아쉬운 이별에 탄식하는 선배의 목소리만 가득했다.

“아…!”

때마침 도서실 앞을 지나치던 은미는 자신의 옆을 지나치는 레게머리의 소년을 발견하고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한다.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소년이 복도의 계단으로 모습을 감추는 것을 보며 자신의 뺨을 꼬집는 은미. 물론 꿈이 아니다.

‘…정말로 있었어!’

얼굴은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체격도, 머리모양도 똑같다! 그렇게 생각한 은미가 레게머리의 소년이 빠져나온 도서실 가운데 문을 보고 그 문에 적혀있는 팻말을 읽어나간다.

‘망상체 연구부’

그 소년도 소년이지만 소년이 나온 동아리 부실 이름도 그 못지않게 괴상하다. 은미는 호기심에 한번 들어가 볼까-하고 생각도 해봤지만, 잡기도 전에 먼저 저절로 돌아가는 손잡이가 그것을 가로막았다.

-덜컹!

들어가 볼까 말까를 고민하는 은미가 망상체 연구부실의 문이 열고 나오던 선배와 눈을 마주쳤다. 당황한 후배를 보며 싱긋 웃음 짓는 선배.

“안녕?”

신입생을 환영하는 그녀의 미소는 언제나 반가움이 가득하다.




폭풍을 하루 앞둔 날씨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창한 오후. 학교를 등진 채 작은 공원을 감싼 산이 분홍빛을 가득 머금은 모란고의 뒷산은 여느 때와 다르게 활기가 넘친다.

인근의 대학교에서 봄꽃 축제를 한다며 밴드가 오고, 행사의 대목을 노리고 돗자리를 편 노점상이 공원 입구에서 자리 잡고 있으며, 아침마다 운동을 겸해서 산을 오르는 어르신들을 위해 자리를 잡은 포장마차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는 다양한 손님들이 기웃거린다.

“쭈나~ 저기, 저기에 돗자리 펴자!”

용돈을 털어서 산 햄버거 세트라는 성의 없는 도시락을 들고 공원 가운데 평평한 공연장이 눈에 훤히 보이는 나무 아래로 달려간 승희. 그녀는 돗자리와 사진기, 그리고 2리터 콜라만 두병이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자신을 따라 올라오는 사복차림의 승준에게 손을 흔든다.

“여기야~ 여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리를 펴고, 공원 중앙의 공연장에서는 악기를 정비하는 대학생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좀 천천히 먹어.”
“누가 할 소리를 하는 거냐.”

먼저 햄버거를 먹어치운 승준은 입가에 소스가 범벅인 승희의 입을 닦아주며 말했다.
무릎 아래를 덮는 새하얀 치마와 검은 티셔츠위에 편안해 보이는 진 재킷을 입은 승희. 티셔츠는 문제없지만 치마위에 케첩이라도 흘렸다간 그야말로 대형 참사, 덕분에 승준은 승희가 햄버거를 먹는 내내 그녀를 신경 써야 했다.

“도대체 왜 흰 치마를 입고 온 거야? 동네 뒷산이라도 산은 산이라고. 지저분해지는ㄷ….”
“아, 공연 시작했다.”
“이게 진짜! 사람 말 좀 들어!”

밴드공연이 시작하자마자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선 승희가 공연장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그 가장 가까운 곳은 흙으로 뒤덮인 맨바닥이고 말이다.

“야, 야야야야-!! 잠깐, 잠깐! 기다려!!”

맨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려는 승희를 붙들고 돗자리를 싸들고 온 가방이라도 깔아준 뒤에야 제자리로 돌아오는 승준. 그는 승희 밑에 가방을 깔아주고 돌아오는 사이에 돗자리를 펼친 것인지, 승준의 돗자리 옆으로 작은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있는 선배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
“안녕? 승준아.”

피크닉 바구니를 팔에 끼고 자리에 앉은 선배는 보온병을 꺼내며 말했다.

“사이좋네. 여동생이니?”
“뭐, 일단은 누나에요. 5분 먼저 나왔으니까.”

승준은 선배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성격, 취미가 달라도 이렇게 다른데 그 누가 쌍둥이라고 생각할까. 선배는 보온병에 담긴 녹차를 컵에 옮겨 담으며 말했다.

“후후, 그러고 보면 둘이 많이 닮은 것 같아.”
“그래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어투로 무심하게 반문하는 승준. 밴드의 음악연주가 고조되어 승준의 이목을 끌지 않았더라면 “특히 키가…”라고 중얼거리는 선배의 목소리를 듣고 화를 냈을 거다.

“혹시 저 애도 볼 수 있니?”
“망상체요? 아뇨. 그건 아니에요.”

광장을 향해 시선을 집중하는 승준과는 달리 흩날리는 꽃잎을 감상하는 선배의 말에 승준이 대답했다. 만약 승희가 망상체를 볼 수 있었다면 승준의 머리에 안착한 짜파게티를 보고 단박에 지적했을 것이다.

『쁘루쁘루! 쁘루쁘루뿌르뿌-!』

근 삼 일간 대부분의 시간을 승준의 머리위에서 보냈던 짜파게티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머리위에서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짜파게티의 소란 통에 광장에서 눈을 뗀 승준. 그는 언제 다가왔는지도 모를 사복차림의 은미를 발견했다.

“저, 저기-.”

머리를 풀고 칠색 가로 스트라이프 니트티에 밤색 면바지를 입은 은미. 우두커니 서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그녀는 평소의 교복도 아닐뿐더러 머리까지 풀고 있다. 그 누가 보더라도 감탄할만한 그녀의 대 변신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변신이 독이 됐다.

“…누구?”

옅은 화장까지 한 은미를 알아보지 못한 승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우…미, 미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승준 덕분에 부끄러움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은미가 얼굴을 붉히며 사람들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 모습을 라이브로 지켜보던 선배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돌아서서 부들부들 떨 뿐이다.

『삐이-! 쁘루삐이-!』

은미를 따라갈 작정이었는지 승준의 머리에서 뛰어내려와 돗자리 위를 미끄러져가던 짜파게티가 선배의 손에 붙잡혔다.

“아는 사람이에요?”
“응. 우리 동아리 부원 중 하나야.”

짜파게티를 피크닉 바구니 속으로 집어넣으며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미소를 짓는 선배. 무언가 허전함을 느낀 승준이 바구니를 주목하자 선배가 재빠르게 부연설명을 이어나간다.

“은미라고, 어제 가입했어.”
“…예?”

“내가 뭘 잘못 들었나?”하고 귀를 후비는 승준을 보고 입을 가린 선배가 눈웃음을 짓는다. 물론 다른 손으로는 바구니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짜파게티에게 꽃잎 한 장을 건네주면서 말이다.

“승준아, 은미를 괴롭히던 그 아이 기억나니?”
“그게 한둘이어야지 기억하죠.”

자석에 철가루 달라붙듯 망상체를 달고 다니는 은미를 생각하고 입술을 비죽이는 승준을 보며 선배가 정정했다. “그 통통하고 못된 아이 말이야. 기억나지?”라고, 처음 승준이 발견하고 몽상공간까지 쫒아온 그 괴물을 말하는 거다.

“저주(詛呪)야.”
“예? 저주라뇨? 누가요? 그 망상체가요?”

바람을 타고 떨어지는 분홍색 꽃잎이 선배의 손 안으로 들어왔다. 바구니의 반대쪽으로 빠져나오려고 바구니 뚜껑을 비집고 나오는 짜파게티에게 또 다른 꽃잎을 쥐어준 선배는 승준을 마주보며 말했다.

“분노, 증오, 그리고 복수심으로 뭉친 한(恨). 은미를 미워하는 누군가의 망상이지. 처음에는 은미를 겁주고 승준이 너를 짓누르는 정도에 그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증오가 쌓이면서 강해진 거야. 그래서 그 아이를 갱생시키려고 잡아뒀던 나도 멈출 수 없었고.”

승준은 선배가 처음부터 그 괴물을 파상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지저분하고 위험한 녀석이 강해진다는 사실에 더더욱 놀랐다. 종국에는 승준이 파상시켰지만, 그녀석의 정체가 저주라면, 누군가 계속 은미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상상을 할 터. 언제든지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소리다.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별일 없었지만 앞으로는 더욱 위험한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

조용해진 바구니를 끌어안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선배가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은미는 우리 동아리에 들어와야 해. 누군가는 도와줘야 하니까.”
“예….”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던 승준이 입을 다물었다. 은미가 어딘가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보일 리가 없다.

‘누군가는-인가.’

꽃잎이 승준의 뺨을 어루만지듯 스쳐지나갔다.




“내가 핫바 사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내가 가면 어딜 가겠냐.”

밴드의 공연이 끝나고 이어지는 잠깐 동안의 휴식시간. 포장마차에서 핫바를 사려고 줄을 선 승희 덕분에 반 강제로 포장마차까지 끌려온 승준은 근처의 나무에 기댄 채 휴대용 게임기를 들고 서있는 종후를 발견했다.

“혼자 뭐하냐?”
“여자 친구 기다린다.”

종후의 손에 들린 게임기 속 두 개의 스크린에는 종후 앞에 있는 공원이 그대로 찍혀있다. 게임기의 전방에 있는 카메라가 뒷산의 꽃나무들을 찍고 있는 것이다.

“뭐야 이 게임은?”

꽃나무 배경 속에 있을 리 없는 소녀 하나가 스크린 속에서 꽃구경을 하며 놀고 있다. 가까운 열도에서 발매되어 유부남도 이혼남으로 만들었다고 유명한 사랑 더하기라는 게임이다.

‘여자 친구라는 게 이쪽인가.’

종후의 괴악한 취향에 경악한 승준이 소리 없이 원위치로 돌아왔다.

“응? 뭐야?”
“아냐, 아무것도.”

양손에 핫바를 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승희에게서 핫바를 받아든 승준. 두 사람은 승희가 홀로 공연을 관람하던 자리로 돗자리를 옮겨 나란히 앉아 공연을 기다린다. 다음 공연을 기대하며 눈을 빛내는 승희가 상체를 좌우로 흔들며 흥얼거리는 가운데, 새로운 사랑을 노래하는 그들의 연주가 시작됐다.

“아-”

첫사랑, 그리고 새로운 인연을 향해 다가가는 소년의 풋풋한 감정이 보컬의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로 흘러나온다. 세상을 향해 노래한다.

“좋다.”
“그러네.”

짧은 감상을 소리죽여 말하는 승희의 어께가 승준에게 기대왔다. 고개를 든 승준의 시선 너머로 바람을 따라 쏟아지는 분홍빛 비가 춤을 추며 낙하한다. 봄을 노래하는 아마추어 벤드의 다정한 합창이 공원의 공기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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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편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진짜로, 이번엔 정말로 끝난거예요!!

근데 문제는 여기까지가 프롤로그 합쳐서 40페이지네요 ㄱ-

뭐, 뭐, 뭐!! 어떻게든 되겠죠!! 푸하하!!
링크
네오 와, 여기까지가 40페이지나 되나요?
중간에 귀여운 삽화가 없어서 매우 아쉬웠어요 ㅠㅠ

짜파게티를 노리는 선배의 모습이 참 귀엽네요 ㅋㅋ

즐겁게 잘 보고 있습니다~

이제 소개는 거의 끝난거 같고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설마 동아리방 모여서 하라는 음악은 안하고 달콤한것들만 맛있게 먹는걸 더 좋아라 하는 어떤 작품처럼
음식 소개 작품으로 변질 되는건 아니겠죠 ㅋㅋ (싫다는 소린 아닙니다 ㅎㅎ)

11-05-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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