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로그인 마이페이지
아이디저장
 


 
홈 < 커뮤니티 < 창작게시판

제목 악의 권화(4)글쓴이오오미미오오미미
날짜 12-08-17 00:57조회2901
오빠…

오빠…

오빠…

 겨우 졸음이 떨쳐 내어진 어수선한 정신이 침묵의 장에서 경직되어가는, 오전 9시를 막 넘어선 학원의 교실. 창가자리에서 제일 뒤쪽에서 한 칸 앞의 자리가 나의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지정석. 뒷자리는 비어있다. 한 달 전 전학생이 앉아 있던 곳이다. 담임에게서 책상을 치우라는 말은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나라고 건드릴 이유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나는 좋았다. 언젠가 누군가 앉게 된다면 어떤 설정의 캐릭터가 좋을까… 나는 그렇게 또 시간을 죽이는 방법으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자리에는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갈망했으나 존재하지 않았던 그녀가 앉아있다. 그리고 나를 보고 있다. 그리고 나를 부르고 있다.

절대 여동생이 아닌, 완벽한 여동생의 모습을 한 뿔 달린 나체의 그녀가 나를 보면서 나를 부르고 있다. 아니, 등교하는 시점에서부터 뿔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감춘 것인가. 의도적으로 감춰야 할 시급한 요소들은 넘쳐나고 있는데 어째서 뿔만을… 아니, 상관없나. 아무튼 그녀는 나 이외의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확실한 듯하다. 꽤나 수다스러웠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녀의 말과 행동을 수다라고 여긴 지점에서부터 무시했다. 철저히 무시하고 철저하게 따돌리고 있다.

그러자 이 년… 아니, 그녀는 대화라는 소통의 방식을 그만두고 나름의 테크닉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단어의 반복. 부름의 반복. 마치 모스부호처럼…

“오빠. 오빠. 오빠…”

그런 모드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무한으로 반복되는 그 치명적이리 달콤한 단어가 염불에 맞먹는 정신파를 획득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언제든 도피가 가능한 무한하고 광할한 영토를 자랑하는 나의 뇌내 세계관을 얕보는 지극히 짧은 계책에 불과하다. 어쨌든 나 이외에, 이 녀석의 모습은 물론이고 소리도 타인에게는 전해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다. 교실 내의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분명 어느 누구도 여동생의 말을 들을 수 없다. 무엇보다 그녀의 완벽한 나체에 시선조차 주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타인에게 의식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유일한 의식자인 나지만 나는 절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소리도 듣지 않는다. 명명백백하게 보이고 명명백백하게 들리지만 나는 보지 않고 또한 듣지 않는다. 어째서 달콤한 그 목소리가 염불이 되었을까. 어째서 순간순간 내 폐부를 후벼 파는, 그랜드 캐니언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을 살색의 굴곡, 그 장관을 경주마가 눈가리개 하듯 피해야만 하는 것일까. 어쨌든 나의 육체가 기거하는 이 세계의 상식의 선에서 나는 먼저 판단해보고 있는 중이다.
 
 나는 미쳐버린 게 아닐까…?




어제 저녁 나는 몽정상태에 이르렀음을 고백한다. XY염색체를 오리지널 설정으로 부여받은 이상, ‘번식’이라는 주기적인 생물학적 성전의 신호에 나는 가끔 지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체의 여동생이 내 배위에 그 장관을 드러낸 시점에서 나는 그것이 실체화 되었음을 인정한다. 나의 피부 외에 느낀 타인의, 그것도 하반신부위로의 살의 맞닿음은 가히 충격적일 수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내 몽정의 범주 안의 것이라 여겼다. 아니, 그러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넌 누구냐… 오빠…”

건조한 첫마디에 달콤한 맺음... 좀처럼 간파할 수 없는 감정상태의, 뿔을 머리에 단 내 사랑의… 그 몸을 획득한 그것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왜 난… 이런 모습인 거지… 왜 난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거지… 왜 난 너와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거지… 오빠…”

참고로 난 용돈이 항상 부족하지만 거지는 아니다. 그리고 형제는 없다. 10여 년 전에는 대명사 격에 포함되던, 흔히 말하던 외동아들이다. 그러니까 나는 거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니다. 거지 오빠는 더더욱 아니다. (9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몸을 움직였다. 그 상태로 누워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깨달은 건 그녀에게서 벗어나 방바닥에 주저앉은 순간이었다. 눈을 깜빡였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 밖의 하늘을 보았다. 구겨진 침대시트와 이불을 보고 배게를 보고, 책상을 보고 컴퓨터를 보고, 의자를 보고, 방바닥을 보고 천정과 형광… 아니, 삼파장 램프가 끼워져 둥근 조명 커버가 씌워진 천정등을 보았다. 그녀를 제외한 모든 현실의 조각들을 시각에 담았고, 뇌가 그 결과를 자동처리 해주기를 바랐다. 뇌는 곧 결과를 출력했다.

회피. 탈주. 도망. 달아나다. 전력질주. 36계 줄행랑.

1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이르기도 전에 내 앞을 그녀는 가로막았다.

“왜 도망가는 거지? 오빠.”

나는 절망했다. 또 다시 거지오빠라고 불려서가 아니다. 그녀의 움직임에 절망했다. 그녀가 나를 저지하려고 했다는 의도적인 움직임에 절망했다. 무엇보다… 말끝을 흐리지 않았다. 말의 끝에 점 세 개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이(異) 세계의 존재가, 신비로운 존재가, 미지의 존재가, 현실 세계와 콘택트 했을 때 보이는 빈틈… 어리숙함을 인터벌 없이 자체극복해냈다는 그 자체가 나의 본능과 전신의 자율신경계에 광속과 필적하는 속도로 경계적신호를 보냈다. 진돗개가 하나, 둘, 셋…
 
“내 질문에 대답해. 오빠. 첫째, 나는 왜 이 모습이 되었는지. 둘째, 왜 넌 내게서 달아나려고 하는지. 셋째, 왜 난 말끝마다 ‘오빠’라는 단어를 추가해야 되는 지. 오빠?”
 
한 순간, 정신을 잃을 뻔 했다.

“오… 오오오…”
“오… 라니… 오빠?”
“오오… 으으으…”
“오…빠…?”
“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파이어 트리거 엑시던트!!!!!!!!!!!!”

나는 달렸다. 나는 그녀의 몸을 뚫고 달렸다. 현재 모 공유사이트에서 인기 다운 컨텐츠 1순위 애니인 ‘파이어 트리거’의 주인공이 필살기를 발동할 때 외치는 대사… 그것을 외치며 나는 그녀의 몸을 뚫고 달렸다. 덕후를 비웃는 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만화와 애니는 인생에 도움이 된다. 위기의 순간에 도움이 된다. 특히 치과에서 신경치료레벨의 두려움과 고통도 일정 상쇄시켜준다. 외침은 내면의 입으로도 가능하니까. 내면의 외침은 자신에게는 가장 큰 데시벨이 될 수 있으니까. 뭐, 그래도 비웃는 자들은 결국 비웃고 말겠지만.

 그렇게 위기 대이탈 스킬을 쓴 나는 가까운 공원벤치에 안착했다. 달만이 보이는 하늘. 서늘한 공기에 내 피부는 닭 속성의 스킬을 구현한다. 왠지 이마에 흐르는 땀에 스스로가 대견해진다. 자랑스러워까지는 않는 선에서 나는 시크함을 추가로 획득한다. 나의 캐릭터 설정은 지속적인 갱신과 강화가 이루어지므로…

“역시 넌 좀 이상해. 오빠.”
“…!!!!!”
“내가 수집한 인간의 표준 점에서 너만큼 이탈해있는 존재는 드물어. 오빠.”
 “……”

위험하다. 절대 위험하다. 으슥하고 어두운 공원도… 그 공원에 서있는 나체의 소녀도… 
보통은 이 두 가지는 요소에 불과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위협해오는 제 3의 등장인물이 있어야 위험과 갈등은 성립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요소만으로도 나는 진짜 절망을 맛보고있다. 체력 게이지는 충분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정신 마나가 제로. 인간은 궁지에 몰렸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고 했던가. 그러나 진가는 두 번 발휘되지 않았다. 그래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쓸 수 있었던 유일한 나의 힘. 나의 진가. 15년에 걸친 내 인생에서 있어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언지 오늘 알 수 있게 되었다.

파이어… 트리거 엑시…

“…”
“…”
“…”
“울어? 오빠?”
“후웁… 후우… 후우우우우…”

네거티브한 감정의 파도에 용케 휩쓸리지 않았다. 나는 파도타기에는 자신 있으니까. 만약 감정의 파도타기란 SF틱한 스포츠 종목이 생긴다면 랭킹 100위안에는 들 자신이 있다. 1위라고 함부로 단언하지 않는 지점에서 또한 나의 시크함은…

“너도 당황스럽다는 건 알겠지만, 그보다 먼저 대답해 주지 않으면 곤란해. 지금도 내 힘은 흩어지고 있단 말이야. 왜 내가 이 딴 모습이 되었는지… 왜 너라는 잡놈이 나와의 매개가 되고 있는지… 그 원인을 알지 못하면 ‘놈’들에게 당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오빠.”
 “…”

 그녀의 언어 구사능력이 광속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는 섬뜩한은 둘재로 미루어두고서, 나는 일단 나를 먼저 의심한다. 금단증상인가… 최근에는 시험기간이라 토르 뺨칠 정도로 벼락을 때리는 바람에 나의 컬렉션들을 돌보지 못하고 플레이 하지 못했다. 그래, 망상인 것으로 간주를 시도한다. 그리고 이내 실패한다.

“빨리 대답해. 오빠.”
 “…헉…”

 망상으로의 간주는 대실패. 대신 대혼돈의 쓰나미…
경악하고 말았다. 온몸에 전기가 통한 듯. 시험공부를 너무 열심히 한 탓일까… 하나의 동작 때문이었다. 단 하나의 단순한 동작. 그녀가 동작을 취했다. 허리춤에 양 손목을 꺾어 받쳤다. 이른바 당당 포즈. 정말로 판에 박히고 개성 없는 당당포즈, 그것을 취한 것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포즈와 함께 골백번은 보았을 저 얼굴… 저 표정은… 지금 당당포즈의 여파로 출렁이는 가슴이 문제가 아니다. 그 가슴이 이 나라의 평균 여성을 기준으로 한 손바닥에 전부 쥐어지고도 조금 남을 제법 큰 사이즈라서가 아니다. 그 가슴이 출렁일 때마다 도드라진 꼭지가 완만한 궤적을 그리며, 그것도 공원의 어슴푸레한 주황색 조명 빛에 반사되어 마치 다 타버리고 심지만 남은 막대 불꽃놀이의 마지막 일렁이는 움직임을 떠올리게 해서가 아니다. 저 당당포즈와 저 뾰로퉁한 표정의 조합은…!!!!

꿀꺽…

“꿀꺽이라니…? 오빠?”

나는 그제야 알아보았다.

“노스 제로 러브…” (North. Zero. Love.)

나는 밤눈이 어둡다든지, 안면인식 장애가 있는 게 아니다. 귀신을 본 적이 있는가. 살인자나 강도를 만난 적이 있는가. 그러면 낯선 사람과의 충격적인 조우에서 상대의 얼굴을 당장에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가 되는가. 많이 있다면 있는대로 두면 된다. 아무튼 나는 그랬다. 

“노스… 러브… 뭐? 오빠?”
“내가 만든… 내가 창조한…”
“창조…?”
“내 상상 속의 나만의…”
“상상…?”

그녀.

“히로인…”
“히로이인~? …오빠?”
“영애…?”
“영… 애…?”

한때 내가 설정한 하렘세계의 캐릭터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 유일하게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니, 오로지 단 하나의 온리루트, 유일의 공략루트였던… 차마… 이어질 수 없을 알기에 이별을 고해야만 했던 새드 스토리의 히로인… 내 여동생… 영애… 

“무슨 개소리야…? 오빠?”

 상상 속에서만 존재해야 할 그녀가 지금 내 눈앞에 등장했다. 나는 다시 뇌에 현실의 정보를 시각적 요소로 쏟아 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 앞에는 어둠, 어둠과 어둠... 오로지 어둠 뿐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에 나는 무릎을 꿇었다. 내 눈 앞에는 단지 세로로 길기만 몸 뚱아리를 가진 한 가로등이 발하는 주황색 불빛. 그 주황의 빛을 받은 실루엣만이 존재했다. 주황빛 라인으로 그려진 여체의 실루엣만이 내 눈앞에 존재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망상 끝은 현실이 아니던가. 어젯밤 나는 망상의 끝에서 마주친 망상이 절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미쳐버린 게 틀림없다.




오늘 아침 나는 눈 뜨자마자 단절모드에 들어갔다. 그녀는 스팸 메일이다. 스팸 문자면서 스팸 전화다. 그런 의미로 아침은 X팸으로 때웠다. 일종의 결의 의식. 하지만 차단 서비스 불가, 영구삭제 불가.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딩동- 댕동-

이제 점심시간까지 남은 수업은 하나. 점심 도시락 반찬 역시 X팸이다.
그리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악의 권화(4)
링크

이전글 20대 가슴이뜨거운청춘 
다음글 여자연습~ 


홈으로 회사소개 이용약관 이메일무단수집거부 개인정보취급방침